전쟁·분쟁1575년 6월 29일

나가시노 전투

다른 이름: 나가시노·시타라가하라 전투, 시타라가하라 전투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이 나가시노성을 에워싼 다케다 가쓰요리의 군대를 시타라가하라에서 조총과 목책으로 크게 무찔렀다. 다케다 집안은 이름난 장수를 여럿 잃고 기울었다.

「나가시노 합전도 병풍」 — 목책 뒤의 오다·도쿠가와 조총대와 돌격하는 다케다 군, 작자 미상, 에도 시대 후기, 나가하마성 역사 박물관
「나가시노 합전도 병풍」 — 목책 뒤의 오다·도쿠가와 조총대와 돌격하는 다케다 군, 작자 미상, 에도 시대 후기, 나가하마성 역사 박물관

Unknown author (Edo period, circa 18th century) · Public domain · 원본

신겐의 뒤를 이은 다케다 가쓰요리는 1575년 미카와로 쳐들어가 도쿠가와 편이 된 오쿠다이라 사다마사의 나가시노성을 에워쌌다. 노부나가와 이에야스는 약 3만 8천 명을 이끌고 구원에 나서 성 서쪽 시타라가하라에 말을 막는 목책을 둘러치고 조총수를 늘어세웠다. 약 1만 5천 명의 다케다 군은 6월 29일 이 진지를 향해 돌격했다가 크게 졌다.

다케다 쪽은 바바 노부하루·야마가타 마사카게·나이토 마사토요 같은 노장을 잃었다. 노부나가가 조총 3천 자루를 세 줄로 갈마들며 쏘게 했다는 "3단 사격"은 에도 시대 이후의 이야기로, 오늘날은 의심하는 연구가 많다. 그래도 대량의 조총을 진지전에 쓴 싸움으로 일본 전쟁사의 전환점으로 꼽힌다. 다케다 집안은 1582년 오다·도쿠가와 군에 멸망했다.

지도에서 보기

157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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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일본
관련 장소
나가시노·시타라가하라

관련 인물

  • 오다 노부나가1534년 – 1582년

    지휘관 · 일본 전국 시대의 다이묘. 1573년 무로마치 막부를 끝내고 조총 부대로 나가시노 전투에서 이겨 통일의 길을 열었으나 혼노지의 변으로 죽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년 – 1616년

    지휘관 · 에도 막부를 연 무사.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기고 1603년 쇼군이 되었으며, 1615년 도요토미 집안을 없앴다

  • 다케다 가쓰요리1546년 – 1582년

    지휘관 · 다케다 신겐의 아들이자 다케다 집안의 마지막 당주.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에 크게 졌고, 1582년 오다군에 쫓겨 덴모쿠산에서 자결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573년 무로마치 막부 멸망
이후 사건
1576년 아즈치성 축성

이 사건이 든 테마

  • 전국 시대와 천하 통일1467년 – 1615년

    오닌의 난에서 오사카 전투까지 — 하극상의 전국 다이묘가 다투던 일본을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가 하나로 묶은 1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