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85년 3월 4일(음력)

톈진 조약

갑신정변 뒤 청의 리훙장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두 나라 군대가 조선에서 함께 물러나고, 앞으로 파병할 때 서로 미리 알리기로 약속했다.

톈진 조약 문서 — 1885년 리훙장과 이토 히로부미
톈진 조약 문서 — 1885년 리훙장과 이토 히로부미

大日本國, 大清國 · Public domain · 원본

갑신정변 뒤 일본은 조선과 한성 조약(1884)을 맺어 배상금과 공사관 신축비를 받아 냈고, 청과는 톈진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조선에 대해 청과 같은 파병권을 얻었다.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때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이 아산에 들어오자, 일본은 이 조약을 내세워 인천에 군대를 보냈고 이는 청일 전쟁으로 이어졌다.

지도에서 보기

188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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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청 · 체결국 — 광서제
일본 · 체결국 — 메이지 일왕
조선 — 고종
관련 장소
톈진

관련 인물

  • 리훙장1823년 – 1901년

    외교관 · 청의 북양 대신. 임오군란 뒤 조선 정책을 주도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톈진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다

  • 이토 히로부미1841년 – 1909년

    외교관 · 일본의 첫 총리대신.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초대 한국 통감이 되었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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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거문도 사건
이후 사건
1886년 육영 공원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