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1415년 7월 6일

후스의 화형

다른 이름: 후스 전쟁, 얀 후스의 처형

1415년 7월 6일 교회를 비판한 보헤미아의 신학자 후스가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어 화형당했고, 이는 후스 전쟁으로 이어졌다.

콘스탄츠 공의회에 선 후스 — 바츨라프 브로지크, 1883년
콘스탄츠 공의회에 선 후스 — 바츨라프 브로지크, 1883년

Václav Brožík · Public domain · 원본

프라하 대학의 학장을 지낸 후스는 잉글랜드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교회의 부와 면벌부 판매를 비판하고 성경만이 신앙의 기준이라며 체코어로 설교했다. 그는 황제가 될 지기스문트의 안전 통행증을 받고 콘스탄츠 공의회에 나갔으나 붙잡혀, 주장을 거두기를 거부하다 1415년 7월 6일 화형당했다.

분노한 보헤미아 사람들은 1419년부터 후스파를 이루어 황제와 교황이 보낸 십자군을 여러 차례 물리쳤다(후스 전쟁, ~1434). 위클리프와 후스는 100년 뒤 루터의 종교 개혁을 앞서 이끈 선구자로 꼽힌다.

지도에서 보기

141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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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신성 로마 제국
관련 장소
콘스탄츠

관련 인물

  • 후스1415년

    주도자 · 보헤미아 프라하 대학의 신학자.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교회를 비판하다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했다

  • 위클리프1384년

    관련자 · 잉글랜드 옥스퍼드의 신학자. 교회의 부와 교황권을 비판하고 성경을 영어로 옮기게 해 종교 개혁의 선구자로 꼽힌다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세 유럽의 변화와 르네상스1077년 – 1517년

    카노사의 굴욕에서 종교 개혁 직전까지 — 절정에 올랐다 꺾인 교황권, 도시와 의회, 백년 전쟁과 흑사병 속에 자란 왕권, 그리고 르네상스와 인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