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927년 8월 1일

난창 봉기

다른 이름: 8·1 봉기, 남창 봉기, 건군절

상하이 쿠데타와 국공 합작의 붕괴 뒤인 1927년 8월 1일, 공산당이 이끄는 국민 혁명군 부대 약 2만 명이 장시성 난창에서 봉기했다. 며칠 만에 도시를 내주고 남쪽으로 물러나 흩어졌지만, 공산당이 스스로 군대를 가진 출발점으로 기념된다.

난창 바이광장의 8·1 난창 봉기 기념탑 — 2023년
난창 바이광장의 8·1 난창 봉기 기념탑 — 2023년

沈澄心 · CC0 · 원본

1927년 4월 장제스의 상하이 쿠데타에 이어 7월 우한의 국민당 좌파도 공산당과 갈라서자, 공산당은 무장 봉기로 맞서기로 했다. 저우언라이가 이끄는 전선 위원회 아래 허룽·예팅·주더·류보청 등이 지휘하는 부대가 8월 1일 새벽 난창의 국민당군을 무장 해제하고 도시를 차지했다.

봉기군은 국민당군의 반격을 피해 8월 초 난창을 떠나 광둥으로 내려갔으나, 차오저우·산터우 일대에서 크게 져 흩어졌다. 남은 병력 일부는 주더가 이끌고 1928년 징강산에서 마오쩌둥의 부대와 합쳤다. 같은 해 9월 마오쩌둥이 후난에서 일으킨 추수 봉기도 실패해 공산당은 도시 대신 농촌으로 눈을 돌렸다.

중화인민공화국은 8월 1일을 인민 해방군의 창건 기념일(건군절)로 삼고 있으며, 군기와 휘장에 "八一"을 새긴다.

지도에서 보기

192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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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중화민국
관련 장소
난창

관련 인물

  • 저우언라이1898년 – 1976년

    핵심 인물 · 중화인민공화국의 첫 총리(1949–1976). 오랫동안 외교를 맡아 1972년 닉슨의 방중을 성사시켰다

  • 주더1886년 – 1976년

    지휘관 · 홍군·인민 해방군의 총사령관. 1928년 징강산에서 마오쩌둥과 합류해 "주·마오"로 불렸고, 1955년 원수가 되었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국공 내전에서 문화 대혁명까지1927년 – 1976년

    1927년 국공 합작이 깨진 뒤 농촌 근거지와 대장정·옌안을 거쳐 내전에서 이긴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토지 개혁·대약진 운동과 대기근·중소 분쟁·문화 대혁명을 지나 1976년 마오쩌둥의 죽음과 4인방 체포에 이르기까지 —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옮겨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