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1774년

난학과 『해체신서』

다른 이름: 난학, 해체신서

데지마의 네덜란드 상관을 통해 서양 학문을 배우는 난학이 일어났고, 1774년 스기타 겐파쿠 등이 네덜란드어 해부서를 번역해 『해체신서』를 펴냈다.

『해체신서』(1774)의 속표지 그림 — 오다노 나오타케
『해체신서』(1774)의 속표지 그림 — 오다노 나오타케

小田野直武 (寛延2年-安永9年) · Public domain · 원본

쇄국 아래에서도 나가사키 데지마의 네덜란드 상관을 통해 서양 학문이 들어왔다.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1720년 기독교와 관계없는 한문 번역 서양 책의 수입 금지를 풀고 네덜란드어 공부를 권하자, 네덜란드어로 서양 학문을 배우는 난학(蘭學)이 일어났다.

1771년 에도의 의사 스기타 겐파쿠와 마에노 료타쿠 등은 처형된 죄인의 해부를 지켜보다 네덜란드어 해부서 『타펠 아나토미아』의 그림이 정확한 데 놀랐다. 그들은 사전도 없이 3년 넘게 번역해 1774년 『해체신서』로 펴냈다. 난학은 의학·천문학·지리학으로 넓어져, 19세기 일본이 서양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는 밑거름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774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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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일본
관련 장소
에도성, 데지마

관련 인물

  • 스기타 겐파쿠1733년 – 1817년

    저자 · 에도 시대의 의사·난학자. 마에노 료타쿠 등과 네덜란드어 해부서를 번역해 1774년 『해체신서』를 펴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93년 안용복의 도일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