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77년 – 1851년

서얼 허통과 중인의 소청 운동

다른 이름: 신해허통, 정유절목, 중인 통청 운동

조선 후기 서얼과 중인이 관직 진출의 차별을 없애 달라고 집단 상소를 올렸다. 서얼은 정조 때 길이 넓어지고 1851년 크게 허통되었다.

양반의 첩에게서 난 자손인 서얼은 문과 응시가 막히고, 관직에 나가도 오를 수 있는 품계가 제한되었다(한품서용). 조선 후기 서얼은 집단 상소로 차별을 풀어 달라고 요구했다. 정조는 1777년 서얼 허통 절목(정유절목)을 내리고, 규장각 검서관에 이덕무·유득공·박제가·서이수 등 서얼 출신 학자를 등용했다. 철종 때인 1851년에는 신해허통으로 청요직 진출의 길이 열렸다.

기술직과 행정 실무를 맡던 중인도 이에 자극받아 1851년 대규모 소청 운동을 벌여 청요직 진출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인들은 시사(詩社)를 만들어 위항 문학을 일으키고 "소대풍요"·"풍요속선" 같은 공동 시집을 펴냈다. 역관 등은 청을 오가며 새 문물을 익혀 개화사상의 한 흐름을 이루었다.

지도에서 보기

1777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정조

관련 인물

  • 정조1752년 – 1800년

    군주 · 조선 제22대 왕. 규장각을 세우고 수원 화성을 쌓았다

  • 철종1831년 – 1863년

    군주 · 조선 제25대 왕. 강화도에 살다가 안동 김씨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강화도령). 임술 농민 봉기 뒤 삼정이정청을 두었다

  • 박제가1750년 – 1805년

    관련자 · 북학파 실학자.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다. 북학의에서 청의 문물을 배우고 소비를 늘려 생산을 자극하자고 했다

  • 유득공1748년 – 1807년

    관련자 · 서얼 출신의 규장각 검서관. 발해고를 써 발해를 우리 역사에 넣고 "남북국"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776년 규장각 설치
이후 사건
1778년 박제가의 북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