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856년 10월 8일
애로호 사건
1856년 10월 광저우의 청 관헌이 해적 혐의로 홍콩 선적의 배 애로호를 수색하고 선원을 잡아갔다. 영국은 국기를 모욕했다며 광저우를 포격했고, 제2차 아편 전쟁이 시작되었다.

Carl Lancedelli (publisher), Jac. Loder (printer of plates) · Public domain · 원본
난징 조약 뒤에도 영국 상품은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고, 광저우 사람들은 외국인이 성안에 들어오는 것조차 막았다. 영국은 조약을 고쳐 더 많은 항구와 베이징의 공사 주재를 얻으려 했다.
1856년 10월 8일 청 관헌이 해적이 탔다며 홍콩에 등록된 소형 범선 애로호에 올라 중국인 선원 12명을 잡아갔다. 배의 등록은 이미 끝나 있었지만, 광저우 영사 파크스는 영국 국기가 모욕당했다며 사과와 선원의 반환을 요구했다. 양광 총독 예밍천이 사과를 거부하자 영국 함대는 광저우를 포격했다.
프랑스도 그해 광시에서 선교사 샤프들렌이 처형된 일을 구실로 함께 나섰다. 영·프 연합군은 1857년 12월 광저우를 점령하고 예밍천을 붙잡아 인도의 콜카타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