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번 체제와 산킨코타이
다른 이름: 막번 체제, 산킨코타이, 참근교대, 무가제법도
에도 막부는 쇼군의 막부와 다이묘의 번이 땅과 백성을 나눠 다스리는 막번 체제를 짜고, 무가제법도(1615)와 산킨코타이(1635)로 다이묘를 묶었다.

Utagawa Hiroshige · Public domain · 원본
에도 막부는 전국에서 가장 넓은 직할지와 에도·오사카·교토 같은 큰 도시, 주요 광산을 쥐고, 나머지 땅은 1만 석이 넘는 영지를 받은 260명 안팎의 다이묘가 번(藩)으로 다스리게 했다. 쇼군과 다이묘가 땅과 백성을 나눠 다스리는 이 짜임을 막번 체제라 한다. 다이묘는 도쿠가와 일가(신판), 대대로의 가신(후다이), 세키가하라 전투 뒤 따른 자(도자마)로 나뉘었고, 믿기 어려운 도자마는 에도에서 먼 곳에 두었다.
1615년 오사카 전투 직후 막부는 무가제법도를 내려 다이묘가 성을 새로 쌓거나 막부의 허락 없이 혼인하는 것을 금했다.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는 1635년 법도를 고쳐 산킨코타이를 제도로 만들었다. 다이묘는 1년씩 에도와 영지를 오가며 살아야 했고, 아내와 후계자는 에도에 남겨 두어야 했다.
오가는 행렬과 에도 저택의 비용은 다이묘의 힘을 깎았지만, 도카이도 같은 가도와 숙장이 정비되고 에도·오사카·교토의 3도가 크게 자라 상업과 조닌 문화가 피어나는 바탕이 되었다. 사회는 무사·농민·수공업자·상인의 신분으로 엄격히 나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