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615년 (무가제법도) · 1635년 (산킨코타이 제도화)

막번 체제와 산킨코타이

다른 이름: 막번 체제, 산킨코타이, 참근교대, 무가제법도

에도 막부는 쇼군의 막부와 다이묘의 번이 땅과 백성을 나눠 다스리는 막번 체제를 짜고, 무가제법도(1615)와 산킨코타이(1635)로 다이묘를 묶었다.

에도 니혼바시를 떠나는 다이묘 행렬 —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도카이도 53역참」 첫 장 (1833–1835년 무렵)
에도 니혼바시를 떠나는 다이묘 행렬 —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도카이도 53역참」 첫 장 (1833–1835년 무렵)

Utagawa Hiroshige · Public domain · 원본

에도 막부는 전국에서 가장 넓은 직할지와 에도·오사카·교토 같은 큰 도시, 주요 광산을 쥐고, 나머지 땅은 1만 석이 넘는 영지를 받은 260명 안팎의 다이묘가 번(藩)으로 다스리게 했다. 쇼군과 다이묘가 땅과 백성을 나눠 다스리는 이 짜임을 막번 체제라 한다. 다이묘는 도쿠가와 일가(신판), 대대로의 가신(후다이), 세키가하라 전투 뒤 따른 자(도자마)로 나뉘었고, 믿기 어려운 도자마는 에도에서 먼 곳에 두었다.

1615년 오사카 전투 직후 막부는 무가제법도를 내려 다이묘가 성을 새로 쌓거나 막부의 허락 없이 혼인하는 것을 금했다.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는 1635년 법도를 고쳐 산킨코타이를 제도로 만들었다. 다이묘는 1년씩 에도와 영지를 오가며 살아야 했고, 아내와 후계자는 에도에 남겨 두어야 했다.

오가는 행렬과 에도 저택의 비용은 다이묘의 힘을 깎았지만, 도카이도 같은 가도와 숙장이 정비되고 에도·오사카·교토의 3도가 크게 자라 상업과 조닌 문화가 피어나는 바탕이 되었다. 사회는 무사·농민·수공업자·상인의 신분으로 엄격히 나뉘었다.

지도에서 보기

1615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일본
관련 장소
에도성

관련 인물

  •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년 – 1616년

    창제자 · 에도 막부를 연 무사.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기고 1603년 쇼군이 되었으며, 1615년 도요토미 집안을 없앴다

  • 도쿠가와 이에미쓰1604년 – 1651년

    주도자 · 에도 막부의 제3대 쇼군(재위 1623–1651). 산킨코타이를 제도로 만들고 기독교 금지와 쇄국 체제를 완성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09년 기유약조 체결
이후 사건
1637년 시마바라의 난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