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1784년

유득공의 발해고

유득공이 발해고를 써 발해를 우리 역사에 넣고, 신라와 발해가 함께 있던 시대를 처음으로 "남북국"이라 불렀다.

유득공은 서문에서 고려가 발해의 역사를 쓰지 않아 고구려 옛 땅을 되찾을 명분을 잃었다고 아쉬워했다. 우리 역사의 범위를 만주까지 넓혀 본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우리 역사·지리·언어를 연구하는 국학이 발달했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의 정통을 세웠고,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서 조선의 역사를 기사본말체로, 한치윤은 해동역사에서 500여 종의 외국 자료로 우리 역사를 정리했다. 이중환의 택리지, 정상기가 백리척을 쓴 동국지도도 이때 나왔다. 김정희는 금석학을 연구해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히고(1816) 금석과안록을 지었다.

지도에서 보기

1784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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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정조
발해
관련 장소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터

관련 인물

  • 유득공1748년 – 1807년

    저자 · 서얼 출신의 규장각 검서관. 발해고를 써 발해를 우리 역사에 넣고 "남북국"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780년 박지원의 열하 사행
이후 사건
1791년 신해박해 (진산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역사서의 편찬375년 – 1931년

    서기·국사·신집에서 조선상고사까지 — 왕권의 과시, 유교 사관, 자주 의식, 민족주의 사학으로 이어진 역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