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894년 11월(음력)

우금치 전투

일본을 몰아내려 다시 일어난 남접·북접 연합 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크게 졌다. 전봉준은 순창에서 붙잡혔다.

농민군의 화승총과 일본군의 무라타 소총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농민군의 화승총과 일본군의 무라타 소총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고려 · CC BY 4.0 · 원본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내정에 간섭하자 농민군은 9월 삼례에서 다시 일어났다(2차 봉기). 전봉준의 남접과 최시형·손병희의 북접이 논산에서 합쳐 서울로 향했다. 1차 봉기가 반봉건 투쟁이었다면 2차 봉기는 반외세 투쟁의 성격이 짙었다.

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신식 무기를 갖춘 관군·일본군 연합군에게 며칠 동안 수십 차례 돌격했으나 크게 패했다. 전봉준은 12월 순창에서 붙잡혀 이듬해 처형되었다. 농민군의 요구는 갑오개혁에 일부 반영되었고, 남은 세력은 뒤에 의병 운동에 들어갔다.

지도에서 보기

1894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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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고종
일본 · 교전국 — 메이지 일왕
관련 장소
우금치 전적지

관련 인물

  • 전봉준1855년 – 1895년

    지휘관 · 동학 농민군을 이끈 지도자. 녹두장군으로 불렸다

  • 최시형1827년 – 1898년

    주도자 · 동학 제2대 교주. 교단을 정비하고 『동경대전』·『용담유사』를 펴냈으며, 2차 봉기 때 북접을 일으켜 남접과 합쳤다

  • 손병희1861년 – 1922년

    지휘관 · 동학 제3대 교주, 천도교를 세웠다.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의 대표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공주475년 – 1894년

    백제의 두 번째 도읍 웅진에서 우금치까지 — 금강을 끼고 충청의 중심이 된 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