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무역 체제
다른 이름: 공행, 코홍, 광동 무역 체제, 13행
1757년 건륭제가 서양 배의 무역을 광저우 한 곳으로 제한하고, 허가받은 상인 조합인 공행만 외국 상인과 거래하게 했다. 이 체제는 아편 전쟁 뒤 난징 조약(1842)으로 끝났다.

William Daniell · Public domain · 원본
강희제는 1684년 해금을 풀고 광저우·샤먼·닝보·상하이 네 곳에 해관을 두어 무역을 허락했다. 차·비단·도자기를 찾는 유럽 배가 몰려들자 건륭제는 1757년 서양 배의 무역을 광저우 한 곳으로 제한했다. 광저우에서는 정부의 허가를 받은 상인 조합인 공행(코홍)만 외국 상인과 거래할 수 있었고, 외국 상인은 성 밖 강가의 13행 상관 거리에서 무역 철에만 머물러야 했다.
18세기 영국에서 차가 국민 음료가 되면서 영국 동인도 회사는 차를 사들이느라 많은 은을 중국에 보냈다. 무역 적자와 공행의 독점, 관리의 수수료에 불만을 품은 영국은 1793년 매카트니 사절단을 보내 무역 확대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이후 인도산 아편을 몰래 들여와 은을 되찾으려 했다. 광저우 체제는 아편 전쟁 뒤 1842년 난징 조약으로 공행이 없어지고 다섯 항구가 열리면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