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제의 정복과 『사고전서』
다른 이름: 사고전서, 십전무공, 건륭 성세
건륭제는 준가르를 무너뜨리고 타림 분지까지 차지해 청의 영토를 가장 넓혔으며, 전국의 책을 모아 『사고전서』를 펴냈다.

A collaboration between Chinese and European painters. The Jesuit missionaries involved in producing the drawings in China were Giuseppe Castiglione, Jean-Denis Attiret, Ignace Sichelbart and Jean Damascene. The engravings were executed in Paris under the direction of Charles-Nicolas Cochin of the Académie Royal at the Court of Louis XVI and the individual engravers include Le Bas, Aliamet, Prevot, Saint-Aubin, Masquelier, Choffard, and Launay. · Public domain · 원본
1735년 즉위해 60년 동안 다스린 건륭제 때 청은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다. 오랫동안 청과 겨루던 몽골계 준가르를 1755~1757년 무너뜨렸는데, 이때 학살과 천연두·기근으로 준가르 사람 대부분이 목숨을 잃어 오늘날 학자들 가운데는 이를 제노사이드로 보는 이가 많다. 이어 1759년 타림 분지의 위구르 무슬림 지역까지 차지해 뒤에 "새 땅"이라는 뜻의 신장이라 불렀다. 티베트는 주장대신을 통해 감독했다. 청은 몽골·신장·티베트를 이번원이 맡는 번부로 두고, 그곳 지배층과 종교·풍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다스렸다. 건륭제는 자신의 원정을 십전무공이라 자랑했으나 버마·베트남 원정은 사실상 실패였다.
문화 사업도 컸다. 1773년부터 전국의 책을 모아 경·사·자·집 네 갈래로 나눠 베껴 쓴 『사고전서』를 1782년 첫 질로 완성했다. 3,400여 종, 8억 자에 가까운 거대한 총서로, 고증학자들이 편찬을 맡았다. 그러나 책을 모으는 과정에서 만주족을 깎아내리거나 청에 맞서는 내용이 담긴 책 수천 종을 없애거나 고쳐, 학문 장려와 사상 통제가 함께 이루어졌다.
말년에는 권신 화신의 부패와 인구 증가에 따른 토지 부족이 겹쳐 1796년 백련교도의 난이 일어났다. 조선의 박지원은 1780년 건륭제의 70세 생일 축하 사절을 따라 열하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고, 박제가 등 북학파는 번성한 청의 문물을 배우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