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71년 4월(음력)
척화비 건립
신미양요 뒤 흥선대원군이 서울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서양과 통상하지 않겠다는 뜻을 널리 알렸다.

Dalgial · CC BY-SA 3.0 · 원본
비문은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우리 만대 자손에게 경계한다)이고, 옆에 "丙寅作 辛未立"(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이라 새겼다.
병인박해·제너럴셔먼호 사건·병인양요·오페르트 도굴 사건·신미양요를 거치며 굳어진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의 상징이다. 1882년 임오군란 뒤 흥선대원군이 청에 끌려가자 대부분 뽑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