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1122년 9월 23일

보름스 협약

다른 이름: 서임권 투쟁의 종결, 칼릭스투스 협약

1122년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5세와 교황 갈리스토 2세가 보름스에서 협약을 맺어, 성직자 임명을 둘러싼 서임권 투쟁이 일단 끝났다.

보름스 협약 문서 — 황제 하인리히 5세와 교황 갈리스토 2세가 서임권 투쟁을 끝낸 약속
보름스 협약 문서 — 황제 하인리히 5세와 교황 갈리스토 2세가 서임권 투쟁을 끝낸 약속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카노사의 굴욕(1077) 뒤에도 성직자를 누가 임명하느냐를 둘러싼 황제와 교황의 다툼은 50년 가까이 이어졌다. 1122년 9월 23일 하인리히 5세와 교황 갈리스토 2세의 사절은 보름스에서 협약을 맺었다. 황제는 성직의 상징인 반지와 지팡이를 주는 서임권을 포기하고 주교를 교회법에 따라 뽑게 했으며, 대신 독일에서는 선거에 참석하고 주교에게 세속의 땅과 권리를 홀(笏)로 내려 줄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성직자 임명권은 교회의 것임이 확인되어 교황권이 높아졌고, 이는 13세기 인노켄티우스 3세 때 교황권이 절정에 이르는 바탕이 되었다. 같은 해(1122) 고려에서는 인종이 즉위했고, 외척 이자겸이 권력을 휘두르다 1126년 난을 일으켰다.

지도에서 보기

112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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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신성 로마 제국 · 체결국
교황령 · 체결국
관련 장소
보름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077년 카노사의 굴욕
이후 사건
1147년 제2차 십자군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세 유럽의 변화와 르네상스1077년 – 1517년

    카노사의 굴욕에서 종교 개혁 직전까지 — 절정에 올랐다 꺾인 교황권, 도시와 의회, 백년 전쟁과 흑사병 속에 자란 왕권, 그리고 르네상스와 인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