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1545년 12월 13일 ~ 1563년 12월 4일

트리엔트 공의회

다른 이름: 트렌토 공의회, 반종교 개혁, 가톨릭 개혁

1545–1563년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어 교황의 권위와 전통 교리를 다시 확인하고 교회 내부를 개혁했다. 반종교 개혁(가톨릭 개혁)의 중심이다.

트리엔트 공의회 — 파스콸레 카티의 프레스코, 1588년 무렵 (로마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
트리엔트 공의회 — 파스콸레 카티의 프레스코, 1588년 무렵 (로마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

Pasquale Cati · Public domain · 원본

신교가 퍼지자 교황 바오로 3세는 1545년 12월 13일 알프스 남쪽의 트렌토(트리엔트)에서 공의회를 열었다. 공의회는 전쟁과 전염병으로 두 번 멈추며 1563년까지 세 시기에 걸쳐 열렸다.

공의회는 신교의 주장을 물리치고 구원에는 믿음과 함께 선행이 필요하며, 신앙의 근거는 성경과 교회의 전통 모두이고, 성사는 일곱 가지라고 정했다. 라틴어 불가타 성경을 공인 성경으로 삼았다. 한편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겸직을 금하고, 주교가 교구에 머물게 하며, 사제를 기르는 신학교를 두게 해 교회 내부의 폐단을 바로잡았다. 앞서 교황청은 종교 재판소를 다시 세웠고(1542), 금서 목록을 펴냈다.

이로써 가톨릭은 남유럽·남독일·폴란드에서 힘을 되찾았고, 신교와의 분열은 굳어졌다. 감정에 호소하는 바로크 미술은 가톨릭 개혁의 정신을 담았다. 같은 해(1545) 조선에서는 명종이 즉위하며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지도에서 보기

154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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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교황령
신성 로마 제국
관련 장소
트렌토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후 사건
1571년 레판토 해전

이 사건이 든 테마

  • 종교 개혁과 절대 왕정1517년 – 1796년

    루터의 95개조에서 예카테리나 2세까지 — 갈라진 크리스트교 세계의 종교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나고, 왕권신수설·상비군·관료제·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 왕정과 동유럽의 계몽 전제 군주가 주권 국가의 세력 균형을 다투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