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른 이름: 지동설, 태양 중심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과학 혁명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펴내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두는 지동설을 내놓았고, 같은 해 베살리우스는 『인체 구조에 관하여』로 근대 해부학을 열었다. 과학 혁명의 시작이다.

Nicolaus Copernicus · Public domain · 원본
중세 유럽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멈춰 있고 해와 별이 그 둘레를 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교회의 가르침과 함께 받아들였다. 그러나 행성의 움직임을 맞추려면 원 위에 원을 겹친 복잡한 계산이 필요했고, 르네상스 시기에 고대 문헌을 다시 읽으며 이를 의심하는 학자들이 나왔다.
폴란드 프롬보르크 성당의 참사회원이던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가운데 두고 지구가 하루에 한 번 자전하며 1년에 한 번 태양 둘레를 돈다고 보면 행성의 움직임을 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랫동안 원고를 내놓지 않다가 1543년 뉘른베르크에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펴냈고, 그해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파도바 대학의 베살리우스는 직접 시신을 해부해 1,000년 넘게 권위를 누린 갈레노스의 잘못을 바로잡은 『인체 구조에 관하여』를 바젤에서 펴냈다.
지동설은 처음에는 계산법의 하나로 여겨졌으나, 케플러·갈릴레이를 거쳐 뉴턴에 이르러 권위가 아닌 관찰과 수학으로 자연을 설명하는 과학 혁명으로 이어졌다. 교회는 1616년 이 책을 금서 목록에 올렸다. 조선에서도 17세기 말~18세기에 김석문과 홍대용이 지구가 돈다는 지전설을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