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19년 9월 사이토 총독 부임

문화 통치

3·1 운동 뒤 새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문화 통치"를 내세웠다. 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바꾸고 한글 신문을 허가했지만, 실제로는 친일파를 길러 민족을 갈라놓으려 했다.

동아일보 창간호 — "문화 통치"로 허가된 한글 신문,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호 — "문화 통치"로 허가된 한글 신문,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 Public domain · 원본

문관도 총독이 될 수 있게 했으나 광복 때까지 문관 총독은 한 명도 없었다. 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바꾸었지만 경찰서와 경찰 수, 경비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1920년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을 허가했으나 검열해 기사를 삭제하고 정간·폐간시켰다. 제2차 조선 교육령(1922)으로 보통학교를 6년으로 늘리고 대학 설립 길을 열었지만 고등 교육 기회는 여전히 적었다. 도 평의회와 부·면 협의회를 두었으나 의결권 없는 자문 기구였고 일본인과 친일 인사가 뽑혔다.

1925년 치안 유지법으로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더 강하게 처벌했다. 문화 통치는 일부 지식인을 회유해 자치론 같은 타협적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민족 운동을 분열시키려는 기만적 통치였다고 교과서는 설명한다.

지도에서 보기

1919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제강점기 조선 —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일본 · 통치국 — 다이쇼 일왕
관련 장소
조선 총독부 청사 터

관련 인물

  • 사이토 마코토1858년 – 1936년

    주도자 · 3·1 운동 뒤 부임한 제3대·제5대 조선 총독. "문화 통치"를 내세웠다

  • 강우규1855년 – 1920년

    관련자 · 1919년 서울 남대문역에서 새로 부임하는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919년 의열단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