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통치
3·1 운동 뒤 새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문화 통치"를 내세웠다. 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바꾸고 한글 신문을 허가했지만, 실제로는 친일파를 길러 민족을 갈라놓으려 했다.

동아일보 · Public domain · 원본
문관도 총독이 될 수 있게 했으나 광복 때까지 문관 총독은 한 명도 없었다. 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바꾸었지만 경찰서와 경찰 수, 경비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1920년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을 허가했으나 검열해 기사를 삭제하고 정간·폐간시켰다. 제2차 조선 교육령(1922)으로 보통학교를 6년으로 늘리고 대학 설립 길을 열었지만 고등 교육 기회는 여전히 적었다. 도 평의회와 부·면 협의회를 두었으나 의결권 없는 자문 기구였고 일본인과 친일 인사가 뽑혔다.
1925년 치안 유지법으로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더 강하게 처벌했다. 문화 통치는 일부 지식인을 회유해 자치론 같은 타협적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민족 운동을 분열시키려는 기만적 통치였다고 교과서는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