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마코토
3·1 운동 뒤 부임한 제3대·제5대 조선 총독. "문화 통치"를 내세웠다
3·1 운동 뒤 부임한 제3대·제5대 조선 총독. "문화 통치"를 내세웠다
3·1 운동 뒤 새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문화 통치"를 내세웠다. 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바꾸고 한글 신문을 허가했지만, 실제로는 친일파를 길러 민족을 갈라놓으려 했다.
일제가 회사령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고(1920), 일본 상품에 매기던 관세를 대부분 없앴다(1923). 일본 자본과 상품이 밀려들어 민족 기업이 어려워졌다.
3·1 운동 뒤 일제가 제2차 조선 교육령을 공포했다. 보통학교를 6년으로 늘리고 조선어를 필수 과목으로 두었으며, 대학을 세울 수 있는 규정을 마련했다.
1932년 5월 15일 해군 청년 장교들이 총리 관저를 습격해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정당 내각 시대가 끝났다.
1936년 2월 26일 육군 황도파 청년 장교들이 1,400여 명의 병력으로 도쿄 중심부를 점거하고 대신들을 살해한 쿠데타 시도. 진압 뒤 통제파가 권력을 잡아 군부의 정치 지배가 굳어졌다.
호헌 운동을 이끈 정당 정치가로, 정우회 총재로서 총리(1931–1932)가 되었다. 5·15 사건 때 해군 청년 장교들에게 관저에서 살해되었다
태학과 국학, 국자감과 성균관에서 근대 학교와 조선 교육령까지 — 관리를 기르는 관학과 그 빈자리를 채운 사학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