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스 제국 의회와 루터
다른 이름: 보름스 칙령, 보름스 국회
1521년 4월 루터는 보름스 제국 의회에서 황제 카를 5세 앞에 섰으나 주장을 거두지 않았고, 제국에서 법의 보호를 박탈당한 뒤 작센 선제후의 보호 아래 성경을 독일어로 옮겼다.

Anton von Werner · Public domain · 원본
95개조 반박문(1517) 뒤 루터는 라이프치히 논쟁(1519)에서 교황과 공의회도 잘못할 수 있다고 말했고, 1520년에는 『독일 귀족에게 고함』 등 인쇄되어 널리 퍼진 소책자로 만인 사제주의를 내세웠다. 교황 레오 10세가 파문 경고 교서를 보내자 루터는 비텐베르크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불태웠고, 1521년 초 파문되었다.
새 황제 카를 5세는 그를 보름스 제국 의회로 불렀다. 4월 17–18일 루터는 성경과 이성으로 반박되지 않는 한 주장을 거둘 수 없다고 답했다. 5월의 보름스 칙령은 그를 이단으로 법의 보호 밖에 두고 저서를 금했으나,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그를 바르트부르크성에 숨겨 주었고, 루터는 그곳에서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옮겼다(1522 출간).
황제는 프랑스·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묶여 칙령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고, 루터를 지지하는 제후가 늘었다. 1529년 슈파이어 제국 의회의 결정에 이들이 항의(protest)하면서 신교도를 "프로테스탄트"라 부르게 되었다. 같은 무렵 조선에서는 조광조가 현량과를 실시하며 개혁을 펴다 기묘사화(1519)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