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562년 9월(음력)

대가야 멸망

진흥왕이 이사부와 사다함을 보내 대가야를 정복했다. 가야 연맹이 완전히 무너졌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 대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
고령 지산동 고분군 — 대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

Korea Heritage Service · CC BY-SA 4.0 · 원본

고령의 대가야는 400년 뒤 금관가야가 약해지자 5세기 후반부터 후기 가야 연맹을 이끌었다. 479년에는 중국 남제에 사신을 보내 벼슬을 받았고, 522년 신라와 혼인 동맹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편에 섰다가 크게 진 뒤 힘을 잃었다.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맞서자 진흥왕은 이사부를 보냈다. 화랑 사다함이 기병 5천을 이끌고 먼저 성문(전단문)으로 뛰어들었고, 대가야는 무너졌다. 이로써 가야 연맹은 완전히 사라지고 낙동강 유역은 모두 신라 땅이 되었다.

가야의 악사 우륵은 가실왕의 명으로 가야금 곡을 지었고, 대가야가 망하기 전 신라로 가서 가야금을 전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2023년 "가야 고분군"의 하나로 세계 유산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56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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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신라 · 정복국 — 진흥왕
가야 · 멸망
관련 장소
고령 지산동 고분군

관련 인물

  • 이사부

    지휘관 · 신라의 장군. 나무 사자로 우산국을 항복시켰고, 진흥왕 때 대가야를 정벌했다

  • 진흥왕534년 – 576년

    군주 · 신라 제24대 왕. 한강 유역과 대가야를 차지하고 순수비를 세웠으며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만들었다

  • 우륵

    관련자 · 대가야의 악사. 가실왕의 명으로 가야금 곡을 짓고, 신라로 가 진흥왕 때 가야금을 전했다

  • 사다함

    지휘관 · 신라의 화랑. 562년 대가야 정벌 때 먼저 성문에 뛰어들어 공을 세웠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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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년 진흥왕 순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