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532년

금관가야 병합

금관가야의 구해왕이 나라를 들어 신라에 항복했다. 신라는 낙동강 하류로 세력을 넓혔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
김해 대성동 고분군 —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

HappyMidnight · CC BY-SA 4.0 · 원본

김해의 금관가야는 철과 바닷길로 전기 가야 연맹을 이끌었으나, 400년 광개토대왕의 군대가 낙동강 하류까지 쳐들어온 뒤 크게 약해졌다. 이후 가야의 중심은 고령의 대가야로 옮겨 갔다. 6세기 들어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해 힘을 키운 신라 법흥왕이 낙동강 쪽으로 압박해 왔다.

532년 구해왕(김구해)은 왕비와 세 아들을 데리고 신라에 항복했다. 법흥왕은 그에게 높은 관등을 주고 본국을 식읍으로 내렸다. 금관가야 왕족은 진골 귀족이 되었다. 구해왕의 아들 김무력은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죽게 한 장수이고, 증손자가 삼국 통일을 이끈 김유신이다.

신라는 낙동강 하류와 바닷길을 얻어 가야 지역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남은 가야 소국들은 562년 대가야가 멸망하면서 모두 신라에 들어갔다.

지도에서 보기

53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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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가야 · 항복
신라 · 병합국 — 법흥왕
관련 장소
김해 대성동 고분군

관련 인물

  • 법흥왕540년

    군주 · 신라 제23대 왕.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했으며 금관가야를 병합하고 "건원" 연호를 썼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538년 성왕의 사비 천도

이 사건이 든 테마

  • 김해기원전 150년 – 685년

    변한의 구야국에서 금관가야로 — 철과 바닷길로 일어선 전기 가야 연맹의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