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538년
성왕의 사비 천도
성왕이 도읍을 넓은 평야와 금강을 낀 사비(부여)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바꾸었다.

웅진(공주)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지키기에는 좋았지만 좁아서 나라를 키우기 어려웠다. 무령왕 때 안정을 되찾은 백제는 성왕 때 금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끼고 바닷길이 열린 사비로 도읍을 옮겼다. 남부여라는 이름에는 부여를 계승한다는 뜻이 담겼다.
성왕은 중앙에 22부의 관청을 두고, 수도를 5부, 지방을 5방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중국 남조의 양과 교류하며 불교를 일으켰고, 인도에서 돌아온 겸익이 율종을 폈다. 552년에는 왜에 불상과 경전을 보냈다.
551년 신라와 함께 한강 하류를 되찾았으나 553년 신라에 빼앗겼고, 성왕은 이듬해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했다. 사비는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도읍이었으며, 부소산성·정림사지 5층 석탑·능산리 절터(백제 금동 대향로) 같은 유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