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호민관 티베리우스·가이우스 그라쿠스 형제가 대토지 소유를 제한해 자영농을 되살리려 했으나, 원로원 귀족의 반대에 부딪혀 둘 다 죽임을 당했다.

Jean-Baptiste Claude Eugène Guillaume · Public domain · 원본
포에니 전쟁 뒤 로마에서는 유력자들이 공유지를 차지해 노예를 부리는 라티푼디움을 넓혔고, 땅을 잃은 자영농은 로마로 몰려와 무산자가 되었다. 자영농은 로마 군대의 근간이었기에 군사력도 약해졌다.
기원전 133년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공유지를 제한하고 남는 땅을 가난한 시민에게 나누어 주는 농지법을 통과시켰으나, 반발한 원로원 의원들에게 지지자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동생 가이우스도 기원전 123년부터 호민관이 되어 곡물을 싸게 나누어 주는 법 등으로 개혁을 이어 갔으나 기원전 121년 원로원과 맞서다 죽었다.
개혁이 실패한 뒤 로마 정치는 원로원을 앞세운 벌족파와 민회를 앞세운 평민파로 갈라졌다. 마리우스가 무산자를 지원병으로 모으는 군제 개혁을 하자 군대는 장군의 사병처럼 되었고, 마리우스와 술라의 대결 이후 장군들이 권력을 다투는 내란의 시대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