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97년 – 1904년
광무개혁
대한제국이 "옛것을 근본으로 새것을 참고한다(구본신참)"는 원칙으로 황제권을 강화하고 양전·지계 발급, 상공업 진흥, 근대 시설 도입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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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원수부를 두어 군대를 직접 지휘하고, 서울의 시위대와 지방의 진위대를 늘렸다. 양지아문(1898)을 두어 토지를 측량하고, 지계아문(1901)에서 근대적 토지 소유 문서인 지계를 발급했다. 궁내부 내장원이 광산·홍삼 등의 수입을 맡아 황실 재정을 키웠다.
상공업 진흥책으로 섬유·철도·운수·광업 회사를 세우게 하고, 상공 학교·광무 학교 같은 실업 학교와 기술 교육 기관을 세웠다. 1899년 서울에 전차가 다니고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전화(1898년 궁궐)가 놓였다. 한청 통상 조약(1899)으로 청과 대등한 관계를 맺었고, 간도에 이범윤을 보내 관리사로 삼았으며(1903), 칙령 제41호(1900)로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해 석도(독도)를 관할하게 했다.
개혁은 황제권 강화에 치우쳐 민권 운동을 억눌렀고, 재정이 부족하고 열강의 간섭이 심해 러일 전쟁으로 중단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