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09년 12월 4일

일진회의 합방 성명

다른 이름: 한일 합방 성명서, 합방 청원

1909년 12월 4일, 친일 단체 일진회가 한국과 일본이 합쳐야 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황제·통감·총리대신에게 합방 청원서를 올렸다.

일진회는 1904년 8월 송병준이 만든 유신회에서 시작해 곧 이름을 바꾸었고, 그해 12월 이용구의 진보회를 합쳐 세를 불렸다. 러일 전쟁 때 일본군의 군수품 수송과 철도 공사에 회원을 내보냈고, 1905년에는 외교권을 일본에 맡기자는 선언서를 내 을사늑약을 앞장서 거들었다.

1909년 10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자, 일진회는 12월 4일 회장 이용구의 이름으로 「한일 합방 성명서」를 발표하고 순종 황제와 통감,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합방을 청원했다. 대한 협회와 서북 학회 등은 성명을 규탄했고 신문들도 반박했다. 일진회는 100만 회원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었다고 본다.

병합 뒤 조선 총독부는 1910년 9월 모든 정치 단체를 해산시켰고, 일진회도 해산료 15만 원을 받고 문을 닫았다.

지도에서 보기

190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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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대한제국 — 순종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09년 안중근 의거
이후 사건
1910년 국권 피탈(경술국치)

이 사건이 든 테마

  • 친일과 청산1905년 – 2010년

    을사늑약에서 『친일인명사전』까지 — 국권 침탈에 협력한 이들이 받은 것, 그리고 광복 뒤 그것을 따지려 한 노력의 좌절과 재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