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청산
을사늑약에서 『친일인명사전』까지 — 국권 침탈에 협력한 이들이 받은 것, 그리고 광복 뒤 그것을 따지려 한 노력의 좌절과 재개
을사늑약에서 『친일인명사전』까지 — 국권 침탈에 협력한 이들이 받은 것, 그리고 광복 뒤 그것을 따지려 한 노력의 좌절과 재개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가 군대로 경운궁을 에워싸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을 강요했다. 통감부가 설치되어 내정까지 간섭했다.
고종을 물러나게 한 일본이 한일 신협약을 강요해 정부 각 부의 차관을 일본인으로 앉혔다(차관 정치). 비밀 각서로 대한제국 군대도 해산했다.
1909년 12월 4일, 친일 단체 일진회가 한국과 일본이 합쳐야 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황제·통감·총리대신에게 합방 청원서를 올렸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했다. 8월 22일 강제로 맺은 병합 조약을 이날 공포했고, 35년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병합을 공포한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조선 귀족령을 내리고 10월 대한제국의 황족·대신 등 76명에게 작위와 은사공채를 주었다.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내선일체"를 내걸고 한국인을 일왕에게 충성하는 "황국 신민"으로 만들려 했다. 황국 신민 서사 암송과 신사 참배, 궁성 요배를 강요했다.
일제가 한국인을 일본·사할린·남양 군도 등의 탄광·군수 공장·비행장 공사에 강제로 끌어가고, 전쟁 막바지에는 징병으로 전쟁터에 내보냈다.
일제가 한국인에게 일본식 성과 이름으로 바꾸게 했다. 따르지 않으면 학교 입학을 막고 식량 배급에서 빼는 등 불이익을 주었다.
제헌 국회가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만들고 특별 조사 위원회를 두어 친일파를 조사했으나, 활동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1949년 6월 6일, 경찰이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사무실을 습격해 특별 경찰대원들을 끌고 갔다. 한 달 뒤 공소 시효가 줄어 반민특위는 힘을 잃었다.
2005년 5월 대통령 소속 위원회가 출범해 4년 반 동안 일제강점기의 반민족 행위를 조사하고, 2009년 11월 1,005명을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정리한 보고서를 냈다.
2005년 특별법에 따라 2006년 7월 조사 위원회가 출범해, 4년 동안 친일 반민족 행위자 168명의 땅 2,359필지를 국가에 귀속시켰다.
2009년 11월 8일, 민간 연구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8년의 편찬 끝에 4,389명을 실은 『친일인명사전』(3권)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