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32년 6월 5일 – 6일

파리 6월 봉기

다른 이름: 1832년 6월 봉기, 6월 봉기

콜레라가 휩쓴 1832년 6월,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을 계기로 공화파가 7월 왕정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이틀 만에 진압된 이 봉기는 위고의 『레 미제라블』 바리케이드 장면의 배경이다.

7월 혁명(1830)으로 선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은 재산이 많은 시민만 정치에 참여하게 해, 공화정을 바라던 학생·노동자와 공화파 비밀 결사의 불만이 컸다. 1832년 봄에는 콜레라가 퍼져 파리에서만 1만 8천여 명이 죽었고, 가난한 동네일수록 피해가 컸다. 5월에는 총리 페리에가, 6월 1일에는 나폴레옹 전쟁의 영웅으로 의원이 되어 왕정을 비판하던 라마르크 장군이 콜레라로 죽었다.

6월 5일 장례 행렬에 모인 군중 속에서 충돌이 일어나 봉기가 시작되었다. 봉기군은 파리 중심부와 동쪽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쌓았으나 시민들은 함께 일어나지 않았고, 정부는 정규군과 국민군을 보내 6월 6일 생메리 수도원 근처의 마지막 바리케이드까지 무너뜨렸다. 정부군과 봉기군을 합쳐 800명가량이 죽거나 다쳤다.

이날 튈르리 정원에서 총소리를 듣고 바리케이드 사이를 지나 몸을 피했던 젊은 빅토르 위고는 30년 뒤 소설 『레 미제라블』(1862)에서 이 봉기를 마리우스와 앙졸라 등 젊은이들의 바리케이드로 그렸다. 그래서 흔히 프랑스 대혁명(1789)의 장면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40여 년 뒤의 이 짧은 봉기다.

지도에서 보기

1832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프랑스
관련 장소
파리

관련 인물

  • 루이 필리프1773년 – 1850년

    군주 · 7월 혁명으로 즉위한 프랑스의 "시민 왕"(1830–1848). 부유한 시민층에 기댄 7월 왕정을 폈으나 1848년 2월 혁명으로 물러났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
이후 사건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관련 작품

각색한 작품(영화·드라마·소설)은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