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54년 5월 30일

캔자스-네브래스카법

다른 이름: 피 흘리는 캔자스

캔자스·네브래스카 준주의 노예제를 주민이 정하게 하여 미주리 타협의 경계선을 없앴다. 캔자스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졌고 노예제 확대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생겼다.

캔자스-네브래스카법(1854) 뒤의 자유주·노예주와 준주 — 매코널 역사 지도, 1919년, 미국 의회 도서관
캔자스-네브래스카법(1854) 뒤의 자유주·노예주와 준주 — 매코널 역사 지도, 1919년, 미국 의회 도서관

McConnell Map Co. · Public domain · 원본

스티븐 더글러스는 대륙 횡단 철도를 놓기 위해 서부 평원에 준주를 세우려 했고, 남부의 표를 얻으려고 노예제 여부를 주민 투표에 맡기는 주민 주권을 넣었다. 1854년 5월 30일 피어스 대통령이 서명한 이 법은 북위 36도 30분 북쪽에 노예제를 금지한 미주리 타협(1820)을 사실상 뒤집었다.

캔자스에는 노예제 찬성파와 반대파 이주민이 몰려들어 따로 의회를 세우고 서로 공격했다. 1856년 5월 찬성파가 로렌스를 약탈하자 존 브라운은 포타와토미에서 찬성파 다섯 명을 죽였다. "피 흘리는 캔자스"라 불린 이 싸움에서 수십 명이 죽었다. 법에 반대한 사람들은 1854년 공화당을 세웠고, 휘그당은 무너졌다.

지도에서 보기

1854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미국 —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
관련 장소
로렌스 (캔자스)

관련 인물

  • 스티븐 A. 더글러스1813년 – 1861년

    핵심 인물 · 일리노이의 민주당 상원 의원. 주민 주권론을 내세워 캔자스-네브래스카법을 만들었고,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에게 졌다

  • 존 브라운1800년 – 1859년

    관련자 · 무장 투쟁을 주장한 노예제 폐지론자. 캔자스에서 싸웠고, 1859년 하퍼스페리 무기고를 습격했다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857년 드레드 스콧 판결

이 사건이 든 테마

  • 남북 전쟁1850년 – 1865년

    1850년 타협에서 링컨 암살까지 — 노예제를 두고 갈라선 미국이 4년의 내전 끝에 연방을 지키고 노예제를 없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