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19년 5월 4일

5·4 운동

다른 이름: 오사 운동, 5·4 신문화 운동

파리 강화 회의가 산둥의 옛 독일 이권을 일본에 넘기기로 하자 1919년 5월 4일 베이징 학생들이 톈안먼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반제국주의·반군벌 운동이 전국으로 번졌다.

산둥 문제에 항의해 톈안먼 앞에 모인 베이징의 학생들 — 1919년 5월 4일
산둥 문제에 항의해 톈안먼 앞에 모인 베이징의 학생들 — 1919년 5월 4일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중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해 산둥 반환을 기대했으나, 1919년 4월 파리 강화 회의는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5월 4일 베이징의 대학생 약 3,000명이 톈안먼 앞에 모여 "밖으로는 주권을 되찾고 안으로는 매국노를 벌하라"를 외쳤고, 친일 관료 차오루린의 집을 불태웠다. 같은 해 3월 조선의 3·1 운동 소식도 중국 지식인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정부가 학생들을 잡아들이자 6월에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상인의 철시와 노동자의 파업이 더해져 운동이 전국으로 퍼졌다. 결국 정부는 친일 관료 세 사람을 물러나게 했고, 중국 대표단은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 서명을 거부했다.

5·4 운동은 학생·노동자·상인이 함께한 대중적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중국 현대사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신문화 운동의 사상이 대중에게 퍼졌고, 쑨원은 그해 중화혁명당을 중국 국민당으로 고쳤으며,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지식인들은 2년 뒤 중국 공산당을 세웠다.

지도에서 보기

191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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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중화민국
일본 — 다이쇼 일왕
관련 장소
베이징

관련 인물

  • 천두슈1879년 – 1942년

    참여자 · 잡지 『신청년』을 펴내 "민주와 과학"을 외치며 신문화 운동을 이끌었다. 중국 공산당 창당을 주도하고 첫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919년 의열단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