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 대학살
다른 이름: 난징 학살, 남경 대학살
1937년 12월 13일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몇 주 동안 포로와 민간인을 학살하고 성폭행·약탈·방화를 저질렀다.

Memorial Hall of the Victims in Nanjing Massacre by Japanese Invaders · Public domain · 원본
상하이 전투에서 큰 손실을 입은 일본군은 퇴각하는 중국군을 쫓아 난징으로 진격했고, 12월 13일 성을 차지했다. 그 뒤 약 6주 동안 일본군은 항복한 포로와 군인으로 의심한 남자들을 집단으로 죽였고, 많은 여성을 성폭행했으며, 약탈과 방화를 벌였다. 남아 있던 서양인들이 만든 난징 안전구 국제 위원회(위원장 욘 라베)는 피란민 20만여 명을 보호하며 일본군의 행위를 기록해 세계에 알렸다.
희생자 수는 기록이 흩어져 크게 갈린다. 전후 중국의 난징 군사 법정은 30만 명 이상으로 판단했고 중국 정부도 30만 명으로 보며, 극동 국제 군사 재판(도쿄 재판)은 20만 명 이상으로 보았다. 학자들의 추정은 수만에서 20만여 명까지 폭이 넓다. 일본 정부는 비전투원 살해와 약탈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정확한 수에는 여러 의견이 있다는 입장이다.
도쿄 재판은 난징 공략을 지휘한 마쓰이 이와네를 이 책임으로 처형했다. 난징 대학살은 일본군의 전쟁 범죄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일본 안에서도 이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려는 주장이 이어져 한중일 역사 갈등의 쟁점이 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