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떠나라 운동
다른 이름: 인도 철퇴 운동, 8월 운동
제2차 세계 대전 중 국민 회의가 영국에 즉시 인도를 떠나라고 요구하며 대중 운동을 시작했다. 간디와 지도부가 곧바로 체포되고 운동은 진압되었으나, 영국의 지배는 더 버티기 어려워졌다.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Dore chakravarty~commonswiki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 CC BY-SA 2.5 · 원본
1939년 영국은 인도인과 상의 없이 인도를 제2차 세계 대전에 끌어들였고, 국민 회의 주 정부들은 이에 항의해 물러났다. 일본군이 미얀마까지 밀려오자 영국은 1942년 크립스 사절단을 보내 전쟁 뒤 자치령 지위를 제안했으나 국민 회의는 거부했다. 1942년 8월 8일 봄베이 대회는 "인도를 떠나라" 결의를 채택했고, 간디는 "하거나 죽거나"라고 외쳤다.
이튿날 새벽 간디·네루 등 지도부가 모두 체포되자, 지도자 없는 군중이 철도·전신·관공서를 공격했고 영국은 군대를 풀어 진압했다. 10만 명 가까이 갇히고 1,000명 넘게 죽었다. 한편 찬드라 보스는 일본의 지원을 받아 인도 국민군을 이끌었고, 무슬림 연맹은 1940년 라호르 결의로 파키스탄 분리를 내건 뒤 전쟁 중 세력을 넓혔다. 전쟁이 끝나자 지친 영국은 인도를 떠나기로 했고, 독립은 인도·파키스탄 분할의 형태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