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아프리카의 민족 운동
후세인·맥마흔 서한에서 이스라엘 건국까지 — 제1차 세계 대전 뒤 민족 자결의 물결 속에서 인도·서아시아·동남아시아·아프리카가 독립과 근대화를 향해 나아간 30여 년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후세인·맥마흔 서한에서 이스라엘 건국까지 — 제1차 세계 대전 뒤 민족 자결의 물결 속에서 인도·서아시아·동남아시아·아프리카가 독립과 근대화를 향해 나아간 30여 년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 연도 | 지역 | 사건 | 핵심 |
|---|---|---|---|
| 1915–16 | 아랍 | 후세인·맥마흔 서한 | 반란 대가로 아랍 독립 약속 |
| 1916 | 아랍 | 사이크스·피코 협정 | 영·프(·러) 비밀 분할 약속 |
| 1917 | 팔레스타인 | 밸푸어 선언 |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지지 |
| 1919–22 | 이집트 | 1919년 혁명 (와프드당) | 1922 독립, 영국 특권 남음 |
| 1919–23 | 튀르키예 | 독립 전쟁 (무스타파 케말) | 세브르 조약 거부 → 로잔 조약 |
| 1920 | 서아시아 | 위임 통치 (산레모) | 시리아·레바논 프, 이라크·팔레스타인 영 |
| 1920–22 | 인도 | 비폭력·비협조 운동 | 롤럿법·암리차르 → 간디, 킬라파트 |
| 1923 | 튀르키예 | 공화국 수립과 개혁 | 칼리프제 폐지, 정교분리, 문자 개혁 |
| 1925 | 이란 | 팔레비 왕조 (레자 샤) | 카자르 폐위, 위로부터의 근대화 |
| 1927 | 인도네시아 | 국민당 (수카르노) | 비협조·완전 독립, 청년의 맹세 |
| 1929 | 인도 | 라호르 대회 (네루) | 푸르나 스와라지 = 완전 독립 |
| 1930 | 베트남 | 공산당 창당 (호찌민) | → 인도차이나 공산당, 베트민(1941) |
| 1930 | 인도 | 소금 행진 | 소금법 거부, 시민 불복종 |
| 1932 | 아라비아 |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 이븐 사우드, 와하브주의, 석유 |
| 1942 | 인도 | 인도를 떠나라 운동 | "하거나 죽거나", 지도부 체포 |
| 1948 |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건국·제1차 중동 전쟁 | 독립 전쟁 / 나크바, 난민 |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이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에게, 오스만 제국에 맞서 봉기하면 전쟁 뒤 아랍인의 독립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의 동의를 얻어 전쟁 뒤 오스만 제국의 아랍 지역을 나누어 가지기로 비밀리에 약속했다.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이 영국의 지원을 받아 오스만 제국에 맞서 봉기했다. 아랍군은 아카바를 거쳐 1918년 다마스쿠스에 들어갔다.
영국 외무 장관 밸푸어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미 살고 있던 비유대인 공동체의 권리도 해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듀보이스가 파리 강화 회의에 맞추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카리브의 흑인 대표를 모아 회의를 열고, 아프리카인의 권리와 자치를 요구했다.
1919년 3월 1일, 독립 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사드 자글룰이 이끈 와프드(대표단)의 지도자들이 유배되자 이집트 전국에서 반영 시위가 일어났다. 영국은 1922년 이집트의 독립을 인정했으나 군대 주둔 등 특권을 남겼다.
영국이 영장 없이 체포·구금할 수 있는 롤럿법을 만들자 인도 곳곳에서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암리차르의 잘리안왈라 바그에서 영국군이 비무장 군중에게 총을 쏘아 수백 명이 죽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진 오스만 제국이 연합국에 분할될 위기에 놓이자, 무스타파 케말이 앙카라를 거점으로 저항해 그리스군을 몰아내고 세브르 조약을 무너뜨렸다.
전쟁 뒤 연합국은 국제 연맹의 위임 통치라는 형식으로 옛 오스만 제국의 아랍 땅을 나누었다. 시리아·레바논은 프랑스, 이라크·팔레스타인·트란스요르단은 영국이 맡았다.
간디와 인도 국민 회의가 영국 상품·학교·법원·관직을 거부하는 비폭력·비협조 운동을 벌였다.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함께한 첫 전국적 대중 운동이었다.
튀르키예와 연합국이 스위스 로잔에서 맺은 강화 조약. 세브르 조약을 대신해 오늘의 튀르키예 국경을 정하고 불평등한 특권(카피툴레이션)을 없앴다.
무스타파 케말이 튀르키예 공화국을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칼리프제 폐지, 정교분리, 로마자 문자 개혁, 여성 참정권 등 서구식 근대화 개혁을 밀어붙였다.
군인 레자 칸이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 의회를 통해 카자르 왕조를 폐위하고 스스로 왕(샤)이 되어 팔레비 왕조를 열었다.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밀어붙였다.
수카르노가 반둥에서 인도네시아 국민당을 세워 네덜란드에 대한 비협조와 완전 독립을 내걸었다. 이듬해 청년 대회는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를 맹세했다.
인도 국민 회의가 라호르 대회에서 자치령이 아닌 완전한 독립(푸르나 스와라지)을 목표로 결의하고, 1930년 1월 26일을 독립의 날로 선포했다.
미얀마(버마)의 청년들이 "우리 버마인 협회"(타킨당)를 만들어 영국에 맞섰다. 스스로를 "주인"(타킨)이라 부르며 버마인이 나라의 주인임을 내세웠다.
응우옌아이꾸옥(호찌민)이 홍콩에서 여러 공산주의 단체를 하나로 묶어 베트남 공산당을 세웠다. 같은 해 인도차이나 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간디가 영국의 소금 전매에 맞서 아슈람에서 바닷가 단디까지 약 390km를 걸어가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었다. 이를 신호로 전국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이 일어났다.
이븐 사우드가 네지드에서 일어나 헤자즈의 후세인 왕가를 몰아내고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을 통일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세웠다.
영국 위임 통치령이던 이라크가 국제 연맹에 가입하며 독립했다. 위임 통치령 가운데 처음이었으나 영국은 군사 기지와 석유 이권을 남겼다.
영국이 인도의 주(州)에 자치를 넓혀 주는 인도 통치법을 만들었다. 이에 따른 1937년 선거에서 국민 회의가 여러 주의 정부를 맡았다.
미국 의회가 10년 뒤 필리핀의 독립을 약속하는 법을 만들고, 마누엘 케손을 대통령으로 하는 필리핀 자치령(커먼웰스) 정부가 출범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국민 회의가 영국에 즉시 인도를 떠나라고 요구하며 대중 운동을 시작했다. 간디와 지도부가 곧바로 체포되고 운동은 진압되었으나, 영국의 지배는 더 버티기 어려워졌다.
영국령 인도가 독립하며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었다. 대규모 이주와 충돌이 뒤따랐다.
영국의 위임 통치가 끝나는 날 유대인 지도부가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자 주변 아랍 국가들이 쳐들어왔다. 이스라엘은 이를 "독립 전쟁"이라 부르고, 70만 명가량이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나크바"(대재앙)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