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71년 8월 12일 – 1973년

남북 적십자 회담

다른 이름: 남북 적십자 회담 (1971)

대한적십자사가 이산가족 찾기를 제의하면서 분단 뒤 처음으로 남북 대화가 열렸다. 판문점 예비 회담을 거쳐 평양과 서울에서 본회담이 열렸다.

남북 적십자 연락 사무소 등이 들어선 판문점 남측의 자유의 집 — 1998년
남북 적십자 연락 사무소 등이 들어선 판문점 남측의 자유의 집 — 1998년

SSGT STEVE FAULISI · Public domain · 원본

미국과 중국이 가까워지는 등 냉전이 누그러지던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가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을 찾아 주자는 "가족 찾기 운동"을 북한에 제의했다. 북한 적십자회가 이틀 뒤 받아들여, 8월 20일 판문점에서 양측 파견원이 처음 만났다. 분단 뒤 남북이 처음으로 마주 앉은 대화였다.

9월 20일부터 판문점에서 예비 회담이 열려 상설 연락 사무소와 직통 전화를 두기로 했고, 1972년 8월 30일 평양에서 1차 본회담, 9월 서울에서 2차 본회담이 열렸다. 이 사이 비밀 접촉을 거쳐 7·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산가족의 주소·생사 확인 방법 등을 두고 맞서 본회담은 1973년 이후 멈추었고, 1985년에야 다시 열려 첫 이산가족 고향 방문이 이루어졌다.

지도에서 보기

197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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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대한민국 — 대통령 박정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최고 지도자 김일성
관련 장소
판문점

관련 인물

  • 박정희1917년 – 1979년

    관련자 · 제5~9대 대통령 (1963–1979). 5·16 군사 정변을 일으켰고,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유신 체제를 이끌었다. 10·26 사태로 숨졌다

  • 김일성1912년 – 1994년

    관련자 · 북한의 최고 지도자 (1948–1994).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수상·주석이 되었다. 6·25 전쟁 뒤 반대파를 숙청하고 1인 독재 체제를 세웠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
이후 사건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이 사건이 든 테마

  • 남북 관계의 온도1953년 – 2024년

    정전에서 「적대적 두 국가」까지 — 회담과 교류로 풀리고 도발과 충돌로 얼어붙기를 되풀이한 남북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