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적십자 회담
다른 이름: 남북 적십자 회담 (1971)
대한적십자사가 이산가족 찾기를 제의하면서 분단 뒤 처음으로 남북 대화가 열렸다. 판문점 예비 회담을 거쳐 평양과 서울에서 본회담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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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가까워지는 등 냉전이 누그러지던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가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을 찾아 주자는 "가족 찾기 운동"을 북한에 제의했다. 북한 적십자회가 이틀 뒤 받아들여, 8월 20일 판문점에서 양측 파견원이 처음 만났다. 분단 뒤 남북이 처음으로 마주 앉은 대화였다.
9월 20일부터 판문점에서 예비 회담이 열려 상설 연락 사무소와 직통 전화를 두기로 했고, 1972년 8월 30일 평양에서 1차 본회담, 9월 서울에서 2차 본회담이 열렸다. 이 사이 비밀 접촉을 거쳐 7·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산가족의 주소·생사 확인 방법 등을 두고 맞서 본회담은 1973년 이후 멈추었고, 1985년에야 다시 열려 첫 이산가족 고향 방문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