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의 온도
정전에서 「적대적 두 국가」까지 — 회담과 교류로 풀리고 도발과 충돌로 얼어붙기를 되풀이한 남북 관계

정전에서 「적대적 두 국가」까지 — 회담과 교류로 풀리고 도발과 충돌로 얼어붙기를 되풀이한 남북 관계

| 연도 | 사건 | 온도 | 무엇이 있었나 |
|---|---|---|---|
| 1953 | 정전 협정 | 출발점 | 전쟁은 멈추었으나 끝나지 않은 채 휴전선으로 갈라졌다 |
| 1968 | 1·21 사태 | 차가워짐 | 북한 특수 부대의 청와대 습격 시도, 이틀 뒤 푸에블로호 나포 |
| 1971 | 남북 적십자 회담 | 따뜻해짐 | 이산가족 찾기 제의로 분단 뒤 첫 남북 대화 |
| 1972 | 7·4 남북 공동 성명 | 따뜻해짐 |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 |
| 1976 |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 차가워짐 |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 피살 |
| 1983 |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 차가워짐 | 버마 순방 중인 대통령 일행을 노린 폭탄, 한국인 17명 사망 |
| 1985 | 이산가족 고향 방문 | 따뜻해짐 | 첫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예술 공연단 교환 |
| 1987 | 대한항공 858편 폭파 | 차가워짐 |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여객기 폭파, 115명 사망 |
| 1991 | 탁구 단일팀 「코리아」 | 따뜻해짐 | 첫 남북 단일팀, 지바 세계 선수권 여자 단체전 우승 |
| 1991 | 유엔 동시 가입 | 따뜻해짐 | 남북한이 함께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
| 1991 | 남북 기본 합의서 | 따뜻해짐 | 상호 체제 인정·불가침·교류 협력,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
| 1993–1994 | 1차 북핵 위기 | 차가워짐 | NPT 탈퇴 선언, 김일성 사망으로 정상 회담 무산, 제네바 합의 |
| 1998 | 정주영의 소 떼 방북 | 따뜻해짐 | 두 차례 소 1,001마리를 싣고 판문점을 넘었다 |
| 1998 | 금강산 관광 | 따뜻해짐 | 남한 관광객을 태운 배가 금강산으로 |
| 1999 | 제1연평해전 | 차가워짐 |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과 교전, 북한 어뢰정 침몰 |
| 2000 | 6·15 남북 공동 선언 | 따뜻해짐 | 분단 뒤 첫 남북 정상 회담 (평양) |
| 2000 | 시드니 올림픽 공동 입장 | 따뜻해짐 | 한반도기를 앞세운 첫 남북 공동 입장 |
| 2002 | 제2연평해전 | 차가워짐 | 북한 경비정의 기습으로 참수리 357호 침몰, 6명 전사 |
| 2003 | 개성 공단 | 따뜻해짐 | 남의 자본·기술과 북의 땅·노동력을 합친 공업 단지 |
| 2006 | 북한 1차 핵실험 | 차가워짐 | 풍계리 핵실험, 유엔 안보리 제재 |
| 2007 | 10·4 남북 정상 선언 | 따뜻해짐 | 두 번째 정상 회담, 서해 평화 협력 특별 지대 |
| 2008 | 금강산 관광객 피격 | 차가워짐 | 관광객이 북한군 총격으로 숨지고 관광 중단 |
| 2010 | 천안함 피격 | 차가워짐 | 초계함 침몰로 46명 사망, 합동 조사단 "북한 어뢰 공격", 5·24 조치 |
| 2010 | 연평도 포격 | 차가워짐 | 민간인 거주 지역 포격, 해병대원·민간인 4명 사망 |
| 2016 | 개성 공단 가동 중단 | 차가워짐 | 4차 핵실험·미사일 발사 뒤 전면 중단 |
| 2018 | 평창 동계 올림픽 | 따뜻해짐 | 공동 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북한 고위급 대표단 |
| 2018 | 4·27 판문점 선언 | 따뜻해짐 | 판문점 정상 회담, 완전한 비핵화·연락 사무소 |
| 2018 | 싱가포르 북미 정상 회담 | 따뜻해짐 | 첫 북미 정상 회담 (이듬해 하노이 회담은 결렬) |
| 2018 | 9·19 평양 공동 선언 | 따뜻해짐 | 평양 정상 회담, 9·19 군사 합의 |
| 2020 | 공동 연락 사무소 폭파 | 차가워짐 | 통신선을 끊은 뒤 개성의 연락 사무소 건물 폭파 |
| 2023–2024 | 「적대적 두 국가」 | 차가워짐 | 동족 아닌 적대 국가 관계 선언, 대남 기구 폐지, 연결 도로 폭파 |
2년 넘는 회담 끝에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이 맺어져 군사 분계선과 비무장 지대가 정해졌다.
북한 특수 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서울에서 저지되었다. 이를 계기로 향토 예비군이 창설되었다.
대한적십자사가 이산가족 찾기를 제의하면서 분단 뒤 처음으로 남북 대화가 열렸다. 판문점 예비 회담을 거쳐 평양과 서울에서 본회담이 열렸다.
남북이 분단 뒤 처음으로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에 합의해 서울과 평양에서 함께 발표했다.
판문점 공동 경비 구역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의 도끼에 맞아 숨졌다. 이 사건 뒤 공동 경비 구역 안에도 경계선이 그어졌다.
버마(미얀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노린 북한 공작원의 폭탄이 랑군의 아웅산 묘소에서 터져 한국의 부총리·장관 등 17명이 숨졌다.
분단 뒤 처음으로 남북의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과 예술 공연단이 서울과 평양을 서로 찾았다.
바그다드를 떠나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858편이 북한 공작원이 남긴 폭탄으로 안다만해 상공에서 폭파되어 115명이 모두 숨졌다.
분단 뒤 첫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일본 지바의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 나가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했다.
제46차 유엔 총회에서 남북한이 함께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남북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불가침과 교류·협력을 약속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어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에 합의했다.
북한이 핵 확산 금지 조약(NPT) 탈퇴를 선언해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높아졌다.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로 일단 봉합되었다.
현대 그룹 정주영 명예 회장이 두 차례 모두 1,001마리의 소를 트럭에 싣고 판문점을 지나 북한을 찾았다. 금강산 관광의 길이 열렸다.
정주영이 소 떼를 이끌고 방북한 뒤, 남한 관광객을 태운 배가 동해항에서 금강산으로 떠났다.
북방 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이 먼저 포를 쏘자 한국 해군이 맞서 북한 어뢰정을 침몰시켰다.
개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워 분단 뒤 처음으로 함께 입장했다. 한국에서 비롯한 태권도가 처음 정식 종목이 되었다.
분단 뒤 첫 남북 정상 회담이 평양에서 열리고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다.
한일 월드컵 3·4위전이 열리던 날, 북방 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이 한국 고속정 참수리 357호를 기습 공격해 6명이 전사했다.
6·15 남북 공동 선언 뒤 남한의 자본·기술과 북한의 땅·노동력을 결합한 공업 단지가 개성에 세워졌다.
북한이 함경북도 풍계리에서 첫 핵실험을 했다. 유엔 안보리가 제재를 결의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평양에서 두 번째 남북 정상 회담을 열고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금강산 관광에 나선 남한 관광객이 새벽 해변을 걷다 북한군 초병의 총에 맞아 숨졌다. 정부는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경계 임무 중이던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두 동강 나 침몰해 장병 46명이 숨졌다. 민군 합동 조사단은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이라고 발표했고, 북한은 부인했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탄 170여 발을 쏘아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다. 정전 협정 뒤 북한이 남한 영토의 민간인 거주 지역을 직접 포격한 첫 사건이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뒤 남한 정부가 개성 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북한은 남측 인원을 추방하고 자산을 동결했다.
서울 올림픽 30년 만에 한국이 연 두 번째 올림픽이자 첫 동계 올림픽. 남북한 선수단이 공동 입장하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꾸렸으며,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문이 남북 정상 회담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정상 회담을 열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김정은 국무 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첫 북미 정상 회담을 열고, 새로운 북미 관계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담은 공동 성명에 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찾아 김정은 국무 위원장과 정상 회담을 열고 9월 평양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군사적 긴장을 줄이기 위한 9·19 군사 합의도 함께 맺었다.
4·27 판문점 선언으로 개성에 세운 남북 공동 연락 사무소 건물을 북한이 폭파했다.
김정은 국무 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북한은 대남 기구를 없애고 남북을 잇는 도로와 철길을 폭파했다.
김정일의 아들, 북한의 최고 지도자 (2011– ). 출생 연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 (1948–1994).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수상·주석이 되었다. 6·25 전쟁 뒤 반대파를 숙청하고 1인 독재 체제를 세웠다
김일성의 아들, 북한의 최고 지도자 (1994–2011). 1980년 후계자로 공식화되었고, 국방 위원장으로 선군 정치를 내세웠다. 출생 연도를 북한은 1942년으로 적는다
제11·12대 대통령 (1980–1988). 12·12 사태로 군권을 잡은 신군부의 중심 인물. 1996년 12·12 사태와 5·18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