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 1세의 통치 체제
다른 이름: 사트라프, 왕의 길, 왕의 눈 왕의 귀, 조로아스터교, 베히스툰 비문
다리우스 1세가 제국을 20여 개 주(사트라피)로 나누어 총독(사트라프)을 보내고, "왕의 눈·왕의 귀"로 감시하며, 왕의 길과 역참으로 제국을 하나로 이었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기원전 522년 즉위한 다리우스 1세는 각지의 반란을 누르고, 그 업적을 베히스툰 바위에 고대 페르시아어·엘람어·바빌로니아어의 세 언어로 새겼다. 이 비문은 뒤에 쐐기 문자를 해독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는 제국을 20여 개의 주로 나누어 사트라프(총독)를 보내고, "왕의 눈", "왕의 귀"라 불린 감찰관을 두어 그들을 감시했다.
수도 수사에서 소아시아의 사르디스까지 약 2,500km의 "왕의 길"을 닦고 역참을 두어 소식이 빨리 오가게 했으며, 금화를 만들고 세금과 도량형을 정비해 교역을 북돋웠다. 페르세폴리스에 거대한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인 사이에는 세상을 선한 신 아후라 마즈다와 악한 신의 싸움으로 보고 최후의 심판을 말하는 조로아스터교가 퍼졌다. 다리우스도 비문에서 아후라 마즈다를 받들었다. 이 선악 이원론과 심판 사상은 유대교와 크리스트교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다리우스의 그리스 원정은 페르시아 전쟁으로 이어졌다. 한반도에서는 이 무렵부터 철기 시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