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877년 2월 – 9월 24일

세이난 전쟁

다른 이름: 서남 전쟁

특권을 잃은 사쓰마의 사족들이 사이고 다카모리를 앞세워 일으킨 마지막이자 가장 큰 사족 반란. 징병제 정부군이 진압했다.

세이난 전쟁을 그린 그림 — 핫토리 료에이, 1927년, 호놀룰루 미술관
세이난 전쟁을 그린 그림 — 핫토리 료에이, 1927년, 호놀룰루 미술관

Hattori Ryōei · Public domain · 원본

폐번치현과 징병령, 칼 차는 것을 금한 폐도령(1876), 녹봉 폐지로 사족은 특권과 생계를 잃었다. 정한론 정변으로 고향 가고시마에 돌아가 사학교를 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를 받들고 1877년 2월 사쓰마 사족 수만 명이 일어섰다. 반란군은 구마모토성을 넘지 못하고 다바루자카 전투에서 밀렸으며, 9월 24일 시로야마에서 사이고가 죽어 끝났다. 평민으로 꾸린 징병제 군대가 이기면서 무력 반란의 시대가 끝나고, 정부 비판은 자유 민권 운동으로 옮겨 갔다.

지도에서 보기

1877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본 — 메이지 일왕

관련 인물

  • 사이고 다카모리1828년 – 1877년

    지휘관 · 사쓰마 출신의 메이지 유신 지도자. 정한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물러났고, 세이난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해 죽었다

  • 오쿠보 도시미치1830년 – 1878년

    관련자 · 사쓰마 출신으로 메이지 정부를 이끈 정치가. 폐번치현과 식산흥업을 밀었고, 정한론에 반대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76년 제1차 수신사 파견
이후 사건
1879년 류큐 처분

관련 작품

각색한 작품(영화·드라마·소설)은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든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