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39년 11월 3일 (귈하네 칙령)

탄지마트 개혁

다른 이름: 귈하네 칙령, 은혜 개혁

오스만 제국이 귈하네 칙령을 내려 서양식 근대 개혁을 시작했다.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신민의 생명·재산을 보장하고 법 앞의 평등을 약속했다.

귈하네 칙령을 낭독하고 탄지마트 개혁을 이끈 무스타파 레시트 파샤
귈하네 칙령을 낭독하고 탄지마트 개혁을 이끈 무스타파 레시트 파샤

John Henry Wright · Public domain · 원본

19세기 들어 오스만 제국은 그리스의 독립과 이집트 무함마드 알리의 도전으로 크게 흔들렸다. 1839년 11월 3일 새 술탄 압뒬메지트 1세는 외무 대신 무스타파 레시트 파샤를 시켜 토프카프 궁전의 귈하네 정원에서 칙령을 낭독하게 했다. 칙령은 모든 신민의 생명·명예·재산을 지키고, 세금을 공정하게 거두며, 징병 제도를 고치고, 이슬람교도와 비이슬람교도를 법 앞에 평등하게 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로부터 1876년까지의 개혁을 탄지마트("재편성")라 한다.

크림 전쟁 뒤 1856년의 개혁 칙령으로 평등은 더 넓어졌고, 서양식 법전·학교·군대·행정 제도가 들어섰다. 그러나 개혁은 위로부터 서둘러 추진되었고, 외국 차관에 기대다가 1875년 재정이 파산했다. 보수 세력의 반발과 발칸 민족들의 독립 요구도 커졌다. 개혁 속에서 자란 신(新)오스만인들은 입헌 정치를 요구했고, 이는 1876년 미드하트 헌법으로 이어졌다.

지도에서 보기

183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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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오스만 제국 · 주도국
관련 장소
콘스탄티노폴리스

관련 인물

  • 무스타파 레시트 파샤1800년 – 1858년

    주도자 · 오스만 제국의 외교관·대재상. 1839년 귈하네 칙령을 낭독하며 탄지마트 개혁을 이끌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21년 그리스 독립 전쟁
이후 사건
1853년 크림 전쟁

이 사건이 든 테마

  • 제국주의와 세계 분할1839년 – 1914년

    탄지마트에서 사라예보까지 — 열강이 서아시아·인도·동남아시아·아프리카·태평양을 나누어 가지고, 그곳 사람들이 개혁과 저항으로 맞선 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