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05년 8월 20일

중국 동맹회 결성

다른 이름: 동맹회, 중국 혁명 동맹회

1905년 8월 20일 도쿄에서 쑨원의 흥중회, 황싱의 화흥회 등 혁명 단체가 모여 중국 동맹회를 만들었다. 만주족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우자며 민족·민권·민생의 삼민주의를 내걸었다.

도쿄 아카사카의 중국 동맹회 결성지 기념비
도쿄 아카사카의 중국 동맹회 결성지 기념비

Takeo Tamashiro · CC BY 4.0 · 원본

러일 전쟁에서 입헌국 일본이 전제 국가 러시아를 이기자, 도쿄의 중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개혁만으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1905년 7월 유럽에서 돌아온 쑨원은 황싱·쑹자오런 등을 만나 혁명 단체를 하나로 묶기로 했고, 8월 20일 도쿄 아카사카에서 중국 동맹회가 출범했다. 쑨원이 총리가 되었다.

동맹회는 「오랑캐를 몰아내고 중화를 되찾으며, 민국을 세우고 땅의 권리를 고르게 한다」를 강령으로 삼았다. 그해 11월 기관지 『민보』 창간사에서 쑨원은 이를 민족·민권·민생의 삼민주의로 정리했다. 동맹회는 량치차오 등 입헌파와 지면에서 맞서는 한편, 남쪽 국경과 광둥에서 잇달아 봉기를 일으켰다.

지도에서 보기

190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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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청 — 광서제
일본 · 망명지 — 메이지 일왕
관련 장소
도쿄

관련 인물

  • 쑨원1866년 – 1925년

    핵심 인물 · 중국 혁명의 지도자. 삼민주의를 내걸고 중국 동맹회를 이끌었으며, 신해혁명 뒤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이 되었다

  • 황싱1874년 – 1916년

    핵심 인물 · 후난 출신의 혁명가. 화흥회를 만들고 쑨원과 함께 중국 동맹회를 이끌었으며, 1911년 광저우 봉기와 한양 방어전을 지휘했다

  • 쑹자오런1882년 – 1913년

    참여자 · 후난 출신의 혁명가. 국민당을 만들어 1913년 첫 국회 선거에서 이기고 내각 책임제를 주장했으나, 그해 3월 상하이역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05년 화폐 정리 사업
이후 사건
1905년 을사늑약

이 사건이 든 테마

  • 신해혁명1894년 – 1916년

    흥중회에서 위안스카이의 죽음까지 — 빚과 개혁 실패 속에 혁명가와 신군이 청을 무너뜨리고 아시아의 첫 공화국을 세웠지만, 공화국은 독재와 황제 놀음을 거쳐 군벌의 시대로 들어간 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