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rris & Ewing, photographer · Public domain · 원본
황싱
다른 이름: 황흥, 黃興
후난 출신의 혁명가. 화흥회를 만들고 쑨원과 함께 중국 동맹회를 이끌었으며, 1911년 광저우 봉기와 한양 방어전을 지휘했다

Harris & Ewing, photographer · Public domain · 원본
다른 이름: 황흥, 黃興
후난 출신의 혁명가. 화흥회를 만들고 쑨원과 함께 중국 동맹회를 이끌었으며, 1911년 광저우 봉기와 한양 방어전을 지휘했다
1905년 8월 20일 도쿄에서 쑨원의 흥중회, 황싱의 화흥회 등 혁명 단체가 모여 중국 동맹회를 만들었다. 만주족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우자며 민족·민권·민생의 삼민주의를 내걸었다.
1911년 4월 27일 황싱이 이끈 동맹회 결사대가 광저우의 양광 총독 관아를 쳤으나 하루 만에 무너졌다. 죽은 이들을 황화강에 묻어 「72열사」라 불렀고, 이 죽음은 반년 뒤의 혁명에 불을 지폈다.
1911년 10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청이 다시 불러낸 위안스카이의 북양군이 한커우와 한양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사이 남쪽과 서쪽의 성들이 잇달아 청에서 떨어져 나갔고, 12월 2일 혁명군이 난징을 차지했다.
1913년 3월 20일 첫 국회 선거에서 이긴 국민당의 쑹자오런이 상하이역에서 총에 맞아 이틀 뒤 숨졌다. 위안스카이가 국회 동의 없이 외국 차관을 들여오자 7월 쑨원 등이 제2혁명을 일으켰으나 두 달 만에 무너졌다.



청 말의 북양군 실력자로, 임오군란 뒤 조선에 머물며 내정에 간섭했다. 신해혁명 때 청 황제를 퇴위시키고 중화민국 대총통이 되었으나 독재 끝에 황제가 되려다 실패했다

흥중회에서 위안스카이의 죽음까지 — 빚과 개혁 실패 속에 혁명가와 신군이 청을 무너뜨리고 아시아의 첫 공화국을 세웠지만, 공화국은 독재와 황제 놀음을 거쳐 군벌의 시대로 들어간 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