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수호 통상 조약
다른 이름: 안세이 5개국 조약, 해리스 조약
에도 막부가 천황의 허락 없이 미국과 통상 조약을 맺었다. 영사 재판권을 주고 관세 자주권이 없는 불평등 조약이었고, 존왕양이 운동과 막부 타도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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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총영사 해리스는 청이 제2차 아편 전쟁에서 몰리는 것을 들어 통상을 압박했다. 1858년 다이로 이이 나오스케는 천황의 칙허 없이 조약을 맺었다. 가나가와(요코하마)·나가사키·니가타·효고(고베)·하코다테를 열고, 영사 재판권을 인정하며, 관세는 두 나라가 협정해 정하기로 해 일본은 관세 자주권을 잃었다. 곧 네덜란드·러시아·영국·프랑스와도 같은 조약을 맺었다(안세이 5개국 조약).
개항 뒤 생사·차가 대량으로 수출되고 금이 빠져나가 물가가 뛰었다. 이이 나오스케가 반대파를 탄압(안세이 대옥)하다 1860년 암살되자, 천황을 받들고 외세를 물리치자는 존왕양이 운동이 거세졌다. 그러나 서양 함대의 보복 포격을 겪은 사쓰마·조슈는 양이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막부 타도로 돌아섰고, 1867년 대정봉환과 이듬해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