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23–1735

옹정제의 군기처와 지정은제

다른 이름: 군기처, 지정은제, 지정은

옹정제는 황제 곁에 군기처를 두어 나랏일을 직접 처리하고, 정세를 토지세에 합쳐 은으로 내게 하는 지정은제를 전국에 넓혔다.

조복을 입은 옹정제의 초상 — 청 궁정 화가, 베이징 고궁 박물원
조복을 입은 옹정제의 초상 — 청 궁정 화가, 베이징 고궁 박물원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강희제의 넷째 아들 옹정제는 형제들과의 후계 다툼 끝에 즉위해 13년 동안 황제의 권력을 한층 강하게 다졌다. 1729년 무렵 준가르와의 전쟁 기밀을 다루려 궁 안에 둔 작은 기구가 군기처로 자리 잡아, 몇 명의 군기대신이 날마다 황제를 만나 나랏일을 처리했다. 명 이래의 내각은 형식만 남았고, 군기처는 청 말까지 최고 정책 기구였다. 지방관이 황제에게 직접 올리는 비밀 보고(주접)에 황제가 붉은 글씨로 답을 달아 관리를 감독했다.

재정에서는 사람에게 매기던 정세(丁銀)를 토지세(地銀)에 합쳐, 땅을 가진 만큼 은으로 내게 하는 지정은제를 전국에 넓혔다. 강희제가 1712년 정세 액수를 고정한 뒤라 가능한 일이었다. 인두세가 사실상 없어지자 호적에서 숨던 사람이 줄었고, 18세기 인구가 크게 늘었다. 한편 반청 사상을 담은 글을 엄히 처벌한 문자의 옥과 천주교 포교 금지(1724)처럼 사상 통제도 강했다.

지도에서 보기

1723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청 — 옹정제
관련 장소
베이징

관련 인물

  • 옹정제 (청 세종)1678년 – 1735년

    군주 · 청의 제5대 황제(재위 1722–1735). 군기처를 두어 황제 권력을 강화하고 지정은제를 전국에 넓혔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712년 백두산정계비 건립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