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902년 – 1920년
유관순
이화 학당 학생. 고향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이끌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충청남도 천안(목천) 병천에서 태어나 서울 이화 학당에서 공부했다. 1919년 3월 1일과 5일 서울의 만세 시위에 나섰고, 학교가 문을 닫자 고향으로 내려가 이웃 마을을 돌며 시위를 준비했다.
4월 1일(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수천 명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일본 헌병이 총을 쏘아 부모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숨졌고, 그는 주동자로 붙잡혔다. 재판정에서 "나는 한국 사람이다.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동포를 죽이고 나의 부모를 죽였는데 왜 나를 재판하느냐"고 따졌다고 전한다.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다. 1920년 3월 1일 3·1 운동 1주년에 옥중에서 다시 만세를 불러 모진 고문을 당했고, 1920년 9월 28일 열여덟 살로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2019년 대한민국장으로 높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