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12년 2월 12일

선통제 퇴위

다른 이름: 청 멸망, 청 황제 퇴위, 푸이 퇴위, 청실 우대 조건

1912년 2월 12일 융유 태후가 여섯 살 선통제 푸이의 이름으로 퇴위 조서를 내려, 268년의 청 왕조와 2,000여 년의 황제 지배가 끝났다. 이튿날 쑨원이 물러나고 위안스카이가 임시 대총통이 되었다.

선통제의 퇴위 조서 — 1912년 2월 12일
선통제의 퇴위 조서 — 1912년 2월 12일

清遜帝 · Public domain · 원본

1912년 1월 1일 난징에서 쑨원이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에 올랐지만, 베이징에는 아직 황제와 북양군이 있었다. 쑨원은 청 황제를 물러나게 하면 대총통 자리를 넘기겠다고 위안스카이에게 약속했다. 위안스카이는 북양군 장군들의 이름으로 공화제를 요구하는 전보를 보내게 하고, 황실을 우대하는 조건을 내걸어 융유 태후를 설득했다.

2월 12일 퇴위 조서가 나왔다. 황제라는 칭호는 그대로 두고, 해마다 400만 냥을 주며, 당분간 자금성에 살게 한다는 조건이었다. 2월 13일 쑨원은 사직서를 냈고, 3월 10일 위안스카이가 베이징에서 임시 대총통에 취임했다. 이튿날 난징의 참의원은 대총통의 권한을 묶어 두려 내각 책임제의 「임시 약법」을 공포했다.

외몽골과 티베트는 청 황제에게 속했을 뿐 중화민국에는 속하지 않는다며 떨어져 나갔다.

지도에서 보기

191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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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청 · 멸망 — 선통제
중화민국 · 승계
관련 장소
자금성

관련 인물

  • 푸이1906년 – 1967년

    군주 · 청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재위 1908–1912). 일본의 지원으로 만주국의 집정(1932)과 황제(1934–1945)가 되었다

  • 위안스카이1859년 – 1916년

    핵심 인물 · 청 말의 북양군 실력자로, 임오군란 뒤 조선에 머물며 내정에 간섭했다. 신해혁명 때 청 황제를 퇴위시키고 중화민국 대총통이 되었으나 독재 끝에 황제가 되려다 실패했다

  • 쑨원1866년 – 1925년

    관련자 · 중국 혁명의 지도자. 삼민주의를 내걸고 중국 동맹회를 이끌었으며, 신해혁명 뒤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이 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11년 양샤 전투

이 사건이 든 테마

  • 신해혁명1894년 – 1916년

    흥중회에서 위안스카이의 죽음까지 — 빚과 개혁 실패 속에 혁명가와 신군이 청을 무너뜨리고 아시아의 첫 공화국을 세웠지만, 공화국은 독재와 황제 놀음을 거쳐 군벌의 시대로 들어간 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