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샤 전투
다른 이름: 양하 전투, 한양 전투, 한커우 전투
1911년 10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청이 다시 불러낸 위안스카이의 북양군이 한커우와 한양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사이 남쪽과 서쪽의 성들이 잇달아 청에서 떨어져 나갔고, 12월 2일 혁명군이 난징을 차지했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우창 봉기에 놀란 청 조정은 북양군을 보내는 한편, 2년 전 내쫓은 위안스카이를 다시 불러냈다. 북양군은 10월 말 한커우에 들어와 거리를 불태웠고, 위안스카이는 11월 1일 내각 총리대신이 되어 군과 정부를 함께 쥐었다. 황싱이 지휘한 혁명군은 한양을 지키려 싸웠으나 11월 27일 한양마저 빼앗겼다.
그러나 그사이 후난·산시(陝西)·장시·산시(山西)·윈난·상하이·구이저우·저장·장쑤·광시·안후이·푸젠·광둥·쓰촨이 차례로 청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12월 2일에는 장쑤·저장 연합군이 난징을 차지했고, 12월 1일 외몽골도 청에서 떨어져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우창을 코앞에 둔 위안스카이는 진격을 멈추고 혁명파와 휴전했다. 청을 무너뜨리는 대가로 새 나라의 대총통 자리를 얻어 내려는 셈이었다. 12월 18일 상하이에서 남북 협상이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