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755–763

안사의 난

다른 이름: 안녹산의 난, 안사지란

755년 절도사 안녹산과 그 부하 사사명이 일으킨 반란이 763년까지 이어졌다. 당은 수도 장안을 잃었다가 되찾았지만, 이후 절도사가 할거하고 율령 체제가 무너지며 쇠퇴했다.

「명황행촉도」 — 안사의 난을 피해 쓰촨으로 가는 현종의 행렬
「명황행촉도」 — 안사의 난을 피해 쓰촨으로 가는 현종의 행렬

Qiu Ying · Public domain · 원본

현종은 즉위 뒤 개원(713–741) 연간에 정치를 바로잡아 당의 전성기(개원의 치)를 이루었다. 그러나 농민이 땅을 떠나며 균전제와 부병제가 흔들리자 군대를 돈을 주고 모집하는 모병제로 바꾸고, 변경에 군사·재정을 함께 쥔 절도사를 두었다. 751년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가 이끈 당군은 탈라스 전투에서 아바스 왕조에 졌다. 말년의 현종은 양귀비를 총애하고, 정치는 이임보와 양국충이 좌우했다.

범양·평로·하동 세 절도사를 겸한 안녹산은 755년 12월 양국충을 친다는 명분으로 범양에서 일어나 낙양을 함락하고 연(燕)을 세웠다. 이듬해 장안이 떨어지자 현종은 쓰촨으로 달아났고, 도중 마외역에서 병사들의 요구로 양귀비가 죽었다. 안녹산은 757년 아들에게 살해되었으나 사사명 부자가 반란을 이었고, 당은 위구르의 도움을 받아 763년에야 난을 끝냈다.

이후 당은 절도사들이 군사·행정·재정을 쥐고 독자 세력이 된 번진에 시달렸고, 균전제와 조용조가 무너져 양세법으로 바뀌었다. 고구려 유민 이정기 일가는 산둥의 평로치청 절도사로 50여 년 독자 세력을 이루었다. 귀족 대신 대토지를 가진 신흥 지주가 성장했고, 이백·두보의 시는 이 시대의 번영과 혼란을 노래했다.

지도에서 보기

75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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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당 · 피침국 — 현종
관련 장소
베이징, 낙양 (뤄양), 장안

관련 인물

  • 안녹산703년 – 757년

    주도자 · 소그드·돌궐계 당의 절도사. 범양 등 세 절도사를 겸하다 755년 반란을 일으켜 연을 세웠으나, 757년 아들에게 살해되었다

  • 당 현종685년 – 762년

    군주 · 당의 황제(재위 712–756). 전반기 개원의 치로 당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말년에 양귀비에 빠지고 안사의 난을 맞아 쓰촨으로 피란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751년 탈라스 전투
이후 사건
756년 발해, 상경으로 천도

이 사건이 든 테마

  • 수·당과 동아시아 문화권317년 – 979년

    남북조의 분열과 굽타 왕조에서 수·당의 통일 제국을 거쳐 송의 건국까지 — 율령·불교·유교·한자를 나눈 동아시아 문화권이 짜이고, 한반도와 일본이 그 틀로 고대 국가를 완성한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