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과 동아시아 문화권
남북조의 분열과 굽타 왕조에서 수·당의 통일 제국을 거쳐 송의 건국까지 — 율령·불교·유교·한자를 나눈 동아시아 문화권이 짜이고, 한반도와 일본이 그 틀로 고대 국가를 완성한 시대

Alexey Komarov · CC BY-SA 4.0 · 원본
남북조의 분열과 굽타 왕조에서 수·당의 통일 제국을 거쳐 송의 건국까지 — 율령·불교·유교·한자를 나눈 동아시아 문화권이 짜이고, 한반도와 일본이 그 틀로 고대 국가를 완성한 시대

Alexey Komarov · CC BY-SA 4.0 · 원본
| 구분 | 중국 (수·당) | 한반도 | 일본 |
|---|---|---|---|
| 율령 | 수 개황율령, 당 율령격식 | 고구려 소수림왕(373), 신라 법흥왕(520) | 다이호 율령(701) |
| 중앙 관제 | 3성 6부, 어사대 | 신라 집사부, 발해 3성 6부 | 2관 8성 |
| 관리 선발 | 과거제 (수, 587 무렵) | 독서삼품과(788), 고려 과거제(958) | 귀족 자제의 관위 세습(음위제) |
| 토지·조세 | 균전제·조용조 → 양세법(780) | 신라 관료전·정전, 녹읍 폐지 | 반전수수법, 조용조 |
| 군사 | 부병제 → 모병제·절도사 | 신라 9서당 10정 | 군단제 |
| 유교 교육 | 국자감, 외국인 대상 빈공과 | 고구려 태학, 신라 국학, 발해 주자감 | 대학료 |
| 불교 전래 |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1세기) | 고구려 372 (전진), 백제 384 (동진) | 백제에서 (552, 538년설) |
| 불교 문화 | 현장의 구법, 룽먼 석굴 | 원측·혜초, 불국사·석굴암 | 도다이지 대불(752) |
| 도성 계획 | 장안 — 바둑판 도로, 주작대로 | 발해 상경 용천부 | 헤이조쿄(710), 헤이안쿄(794) |
| 문자 | 한자·한문 | 한문, 이두·향찰 | 만요가나 → 가나 문자 |
| 대외 관계 | 조공·책봉, 기미 정책 | 신라·발해의 당 책봉, 나당 동맹 | 견수사·견당사(630–894) |
| 사람·물자 교류 | 산둥의 신라방·신라원 | 숙위 학생, 장보고의 청해진 |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
분열이 이어진 위진 남북조 시대에 9품중정제로 관직을 대물림한 문벌 귀족이 사회를 이끌며, 청담과 도교·불교, 서예·회화·시문의 귀족 문화를 꽃피웠다.
찬드라굽타 1세가 갠지스강 유역에 굽타 왕조를 세워 북인도를 다시 통일했다. 힌두교가 자리 잡고 산스크리트 문학·굽타 양식 미술·수학이 꽃핀 인도 고전 문화의 시대였다.
소수림왕이 전진에서 온 순도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우고, 율령을 반포했다.
선비족 탁발부가 세운 북위가 439년 북량을 멸망시켜 5호 16국의 분열을 끝내고 화북을 통일했다. 강남의 송과 맞서는 남북조 시대가 열렸다.
북위 효문제가 균전제를 실시하고 494년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선비족의 옷·말·성씨를 한족식으로 바꾸고 한족과의 혼인을 장려하는 한화 정책을 폈다.
성왕이 노리사치계를 보내 왜에 불상과 경전을 전했다. 백제 문화는 일본 아스카 문화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수 문제(양견)가 581년 수를 세우고 589년 남조의 진을 멸망시켜 약 300년 만에 중국을 다시 통일했다. 시험으로 관리를 뽑는 과거제를 처음 실시했다.
중국을 통일한 수가 네 차례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거듭된 원정은 수가 무너지는 원인이 되었다.
수 양제가 605–610년 황허와 화이허·창장, 그리고 북쪽 탁군(오늘 베이징)까지 잇는 대운하를 완성해 강남의 경제와 화북의 정치 중심을 이었다.
을지문덕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살수(청천강)에서 수나라 별동대를 크게 무찔렀다.
수 말의 혼란 속에 태원에서 일어난 이연(당 고조)이 장안을 차지하고 618년 당을 세웠다. 626년 현무문의 변으로 아들 이세민(태종)이 뒤를 이었다.
당 태종이 3성 6부의 중앙 관제와 율령격식, 균전제·조용조·부병제를 갖추고 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이며 다스려 "정관의 치"로 불리는 안정기를 이루었다.
당의 승려 현장이 629년 나라의 금지를 어기고 인도로 떠나, 날란다 승원에서 공부한 뒤 645년 경전 650여 부를 가지고 장안에 돌아왔다. 여행기 『대당서역기』를 남겼다.
티베트 고원을 통일한 토번의 송첸캄포가 641년 당의 문성 공주를 왕비로 맞았다. 라싸에 도읍하고 불교와 티베트 문자를 들였다.
645년 나카노오에 황자와 나카토미노 가마타리가 권세를 휘두르던 소가씨를 무너뜨리고, 당의 율령 제도를 본떠 왕(천황) 중심의 중앙 집권 국가를 세우려는 개혁을 시작했다.
당 태종이 직접 이끈 대군이 요동의 성들을 함락했으나, 안시성은 88일을 버텨 당군을 물러나게 했다.
김춘추가 당에 가서 당 태종과 군사 동맹을 맺었다.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평양 이남은 신라가 갖기로 했다.
백제 부흥군을 도우러 온 왜의 수군이 백강 어귀에서 나당 연합군에게 크게 졌다. 배 400척이 불탔다.
나당 연합군이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보장왕이 항복하면서 고구려가 멸망했다.
신라가 한반도를 차지하려던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대동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선 남쪽을 통일했다.
당 고종의 황후였던 측천무후가 690년 스스로 황제가 되어 나라 이름을 주(周)로 바꾸었다. 중국 역사의 유일한 여성 황제로, 과거로 새 관료를 등용했다.
고구려 장수 출신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웠다. 뒤에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일본이 710년 당의 장안을 본뜬 헤이조쿄(나라)로 도읍을 옮겨 나라 시대를 열었다. 다이호 율령에 따라 다스리고, 견당사를 보내 당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신라 승려 혜초가 바닷길로 인도에 가 다섯 천축국과 서역을 돌아보고 당으로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문왕이 당과 친선을 맺고 당의 제도를 받아들여 3성 6부의 중앙 관제를 갖추었다. 대흥이라는 연호를 쓰고 신라도를 열어 신라와 교류했다.
755년 절도사 안녹산과 그 부하 사사명이 일으킨 반란이 763년까지 이어졌다. 당은 수도 장안을 잃었다가 되찾았지만, 이후 절도사가 할거하고 율령 체제가 무너지며 쇠퇴했다.
780년 당 덕종 때 재상 양염의 건의로, 사람 머릿수에 매기던 조용조 대신 실제 가진 토지와 재산에 따라 여름·가을 두 번 세금을 거두는 양세법을 시행했다.
간무 일왕이 794년 헤이안쿄(교토)로 도읍을 옮겨 헤이안 시대가 열렸다. 894년 견당사를 멈춘 뒤 가나 문자와 일본 고유의 색채가 짙은 국풍 문화가 발달했다.
장보고가 흥덕왕의 허락을 받아 완도에 청해진을 세웠다. 해적을 소탕하고 신라·당·일본을 잇는 바다 무역을 장악했다.
875년 소금 밀매업자 황소가 일으킨 농민 반란이 중국 전역을 휩쓸었다. 880년 장안을 차지했다가 884년 진압되었으나, 당은 이로써 사실상 무너졌다.
907년 절도사 주전충이 당을 멸망시키고 후량을 세웠다. 화북에는 다섯 왕조(5대)가 잇달아 들어서고 강남 등에는 열 나라(10국)가 일어난 분열기가 960년까지 이어졌다.
야율아보기가 거란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916년 황제를 칭해 나라를 세웠다.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고, 936년 연운 16주를 얻어 북방의 강국이 되었다.
거란의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쳐서 도읍 홀한성(상경)을 에워쌌고, 마지막 왕 대인선이 항복했다.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광종이 과거를 처음 실시해, 유교 지식을 갖춘 관리를 시험으로 뽑았다.
후주의 장수 조광윤(송 태조)이 960년 진교의 변으로 송을 세우고, 절도사의 군권을 거두어 황제 직속으로 하고 과거로 뽑은 문관을 우대하는 문치주의를 폈다. 979년 중국 본토를 다시 통일했다.
고구려의 장수. 거짓으로 물러나며 수나라 별동대를 지치게 한 뒤 살수에서 크게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