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카왕의 불교 진흥
다른 이름: 아소카 석주, 칼링가 전쟁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인도 대부분을 통일하고, 칼링가 정복의 참상을 뉘우쳐 불교에 귀의한 뒤 다르마(법)에 의한 통치를 펴고 불교를 널리 퍼뜨렸다.

Yann ( talk ) · CC BY-SA 4.0 · 원본
찬드라굽타의 손자 아소카왕은 즉위 8년 무렵 동해안의 칼링가(오늘 오디샤)를 정복해 남쪽 끝을 뺀 인도 대부분을 다스렸다. 그는 바위 칙령에 이 전쟁에서 10만 명이 죽고 15만 명이 끌려갔다고 스스로 적고 그 참상을 깊이 뉘우쳤다. 이후 불교에 귀의해 무력 대신 다르마(법), 곧 살생을 삼가고 부모·스승을 공경하며 다른 종교도 존중하라는 가르침으로 다스리려 했다.
그는 이 가르침을 바위와 돌기둥(석주)에 새겨 제국 곳곳에 세웠는데, 대부분 브라흐미 문자로 썼고 서북쪽에는 그리스어·아람어로도 새겼다. 사르나트 석주의 사자 머리 장식은 오늘 인도의 국장이 되었다. 산치 대탑 같은 스투파를 세우고, 파탈리푸트라에서 불경을 정리하는 결집(제3차 결집)을 열었다고 전한다. 아들 마힌다를 스리랑카에 보내는 등 사방에 포교사를 파견해, 불교는 스리랑카를 거쳐 뒤에 동남아시아로 퍼졌다(상좌부 불교).
아소카왕이 죽은 뒤 제국은 빠르게 약해졌고, 기원전 185년 무렵 슝가 왕조로 바뀌었다. 재위 연대는 기원전 268–232년 무렵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