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16 – 19세기

대서양 노예 무역과 삼각 무역

다른 이름: 노예 무역, 삼각 무역, 중간 항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상인들이 아프리카 사람 1,200만 명 넘게를 노예로 사서 아메리카로 실어 날랐다.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를 잇는 삼각 무역이 이루어졌다.

노예선 브룩스호의 짐칸 배치도(1788–1789) — 사람을 빈틈없이 눕혀 실은 모습으로, 영국 노예 무역 폐지 운동에 쓰였다
노예선 브룩스호의 짐칸 배치도(1788–1789) — 사람을 빈틈없이 눕혀 실은 모습으로, 영국 노예 무역 폐지 운동에 쓰였다

Printed by James Phillips, George Yard, Lombard Street, London · Public domain · 원본

아메리카 원주민이 전염병과 가혹한 노동으로 크게 줄자, 유럽인은 아프리카에서 노동력을 데려왔다. 1518년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1세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노예를 곧장 실어 나르는 것을 허가했고, 포르투갈은 브라질의 사탕수수 농장에 많은 노예를 보냈다. 17세기부터는 네덜란드·영국·프랑스가 뛰어들었고, 18세기에는 영국이 가장 많이 실어 날랐다. 서아프리카 해안의 왕국들은 전쟁 포로 등을 총·직물과 바꾸어 넘겼다.

유럽의 배는 총·직물·술을 싣고 아프리카로 가서 노예와 바꾸고, 노예를 아메리카에 팔아 설탕·담배·면화를 싣고 돌아왔다. 이를 삼각 무역이라 한다. 노예들은 좁은 배 밑에 쇠사슬로 묶인 채 두 달 가까이 대서양을 건넜고(중간 항로), 그 사이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배에 실린 사람은 약 1,250만 명, 살아서 아메리카에 닿은 사람은 약 1,070만 명으로 추산된다.

삼각 무역으로 쌓인 부는 영국의 산업 혁명에 밑천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 아프리카는 젊은 인구를 잃고 노예 사냥 전쟁에 시달렸고, 아메리카에는 아프리카계 사회와 인종 차별이 뿌리내렸다. 18세기 말 계몽사상과 종교인의 노예제 폐지 운동이 일어나 영국은 1807년 노예 무역을, 1833년 노예제를 폐지했고, 미국은 1865년, 브라질은 1888년에 노예제를 없앴다.

지도에서 보기

1518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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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포르투갈
에스파냐
영국
포르투갈령 브라질
관련 장소
엘미나성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492년 콜럼버스 교환

관련 작품

  • 드라마: 뿌리각색드라마 · 1977 · ABC

각색한 작품(영화·드라마·소설)은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든 테마

  • 이슬람 제국의 번영과 대서양 세계1500년 – 1800년

    술레이만 1세의 오스만, 아크바르의 무굴, 아바스 1세의 사파비가 번영하다 18세기에 기울고, 대서양에서는 노예 무역과 식민지가 아메리카를 바꾸어 미국 독립에 이른 3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