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구 포대 전투 (1859)
다른 이름: 제2차 다구 포대 전투
1859년 6월 톈진 조약을 비준하러 가던 영·프 사절을 호위한 영국 함대가 하이허강 어귀를 억지로 뚫으려다, 셍게린첸이 다시 쌓은 다구 포대의 포격을 받고 크게 져 물러났다.

Lt. Col. William Godfrey Rayson Masters R.M. · Public domain · 원본
톈진 조약은 1년 안에 베이징에서 비준하기로 되어 있었다. 1859년 6월 영국 공사 브루스와 프랑스 공사 부르불롱이 군함을 거느리고 하이허강 어귀에 왔다. 청은 북쪽의 베이탕으로 상륙해 베이징으로 오라고 했지만, 영국의 호프 제독은 강어귀의 쇠사슬과 말뚝을 뚫고 톈진으로 올라가려 했다.
6월 25일 지난해 무너진 포대를 다시 쌓고 기다리던 몽골 출신 장군 셍게린첸의 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영국은 포함 여러 척을 잃고, 갯벌에 상륙한 병사들도 진창에 빠져 쓰러졌다. 사상자가 400명을 넘었고 호프 제독도 다쳤다. 중립을 지키던 미국의 태트널 제독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며 영국 보트를 끌어 주었다.
아편 전쟁 뒤 청이 서양 군대를 이긴 드문 싸움이었다. 그러나 조정은 이 승리로 자신감을 얻어 조약을 미루었고, 이듬해 영·프 연합군은 훨씬 큰 병력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