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860년 10월 6일 – 19일

원명원 약탈과 방화

1860년 10월 베이징에 다다른 영·프 연합군이 청 황실의 정원 원명원을 약탈하고, 엘긴 백작의 명령으로 불태웠다. 함풍제는 이미 러허로 피란한 뒤였다.

불타기 직전의 청 황실 정원 — 펠리체 베아토가 1860년 10월 6–18일 사이에 찍은 사진
불타기 직전의 청 황실 정원 — 펠리체 베아토가 1860년 10월 6–18일 사이에 찍은 사진

Felice Beato · Public domain · 원본

1859년 톈진 조약을 비준하러 온 영·프 사절은 다구 포대에서 포격을 받고 물러났다. 이듬해 영·프 연합군 약 1만 8,000명이 다시 와 8월 다구 포대를 함락하고 톈진을 거쳐 베이징으로 나아갔다. 9월 바리차오에서 청의 기병을 무찌르자 함풍제는 동생 공친왕에게 뒷일을 맡기고 러허(청더)의 피서산장으로 달아났다.

10월 6일 베이징 서북쪽 원명원에 먼저 이른 프랑스군과 뒤이은 영국군은 150년 동안 쌓인 황실의 보물을 약탈했다. 협상하러 갔다가 붙잡힌 영국·프랑스 사람들 가운데 20명 가까이가 죽어서 돌아오자, 영국 전권 대사 엘긴 백작은 황제에게 벌을 준다며 원명원을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10월 18일부터 이틀 동안 불길이 정원을 삼켰다.

지금 남은 서양식 건물 서양루의 돌기둥 잔해는, 중국에서 「백 년의 치욕」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86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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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영국 · 교전국
프랑스 · 교전국
청 · 피해국 — 함풍제
관련 장소
원명원, 다구 포대, 열하 피서산장

관련 인물

  • 엘긴 백작 (제임스 브루스)1811년 – 1863년

    지휘관 · 영국의 외교관. 제2차 아편 전쟁의 전권 대사로 톈진·베이징 조약을 맺었고, 1860년 원명원을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파르테논 조각을 가져간 엘긴 백작의 아들

  • 함풍제 (청 문종)1831년 – 1861년

    군주 · 청의 제9대 황제(재위 1850–1861). 태평천국과 제2차 아편 전쟁을 겪고, 1860년 영·프 연합군이 베이징에 다가오자 러허로 피란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59년 다구 포대 전투 (1859)
이후 사건
1860년 베이징 조약

이 사건이 든 테마

  • 아편 전쟁1757년 – 1864년

    광저우 한 곳의 문에서 원명원의 불길까지 — 차와 은과 아편이 얽힌 무역이 제1·2차 아편 전쟁이 되어, 청이 문을 열고 땅을 내준 1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