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원 약탈과 방화
1860년 10월 베이징에 다다른 영·프 연합군이 청 황실의 정원 원명원을 약탈하고, 엘긴 백작의 명령으로 불태웠다. 함풍제는 이미 러허로 피란한 뒤였다.

Felice Beato · Public domain · 원본
1859년 톈진 조약을 비준하러 온 영·프 사절은 다구 포대에서 포격을 받고 물러났다. 이듬해 영·프 연합군 약 1만 8,000명이 다시 와 8월 다구 포대를 함락하고 톈진을 거쳐 베이징으로 나아갔다. 9월 바리차오에서 청의 기병을 무찌르자 함풍제는 동생 공친왕에게 뒷일을 맡기고 러허(청더)의 피서산장으로 달아났다.
10월 6일 베이징 서북쪽 원명원에 먼저 이른 프랑스군과 뒤이은 영국군은 150년 동안 쌓인 황실의 보물을 약탈했다. 협상하러 갔다가 붙잡힌 영국·프랑스 사람들 가운데 20명 가까이가 죽어서 돌아오자, 영국 전권 대사 엘긴 백작은 황제에게 벌을 준다며 원명원을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10월 18일부터 이틀 동안 불길이 정원을 삼켰다.
지금 남은 서양식 건물 서양루의 돌기둥 잔해는, 중국에서 「백 년의 치욕」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